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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제1부 (1)미국 일방주의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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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본다] 제1부 (1)미국 일방주의의 뿌리

입력
200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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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특별하다'서 출발, 세계를 주도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승리하고 필리핀, 그루지아 등지에서 반(反) 테러전쟁을 지속해 나가고 있는 지금 미국의 ‘일방주의(unilateralism)’가 재차 강화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만만치 않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 사태로 잃은 미국의 자존심 회복을 만천하에 알리듯 작년 12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핵실험금지조약(CTBT), 생물무기금지협정(BWC), 화학무기금지협정(CWC)과 같은 다자간 국제 군비통제 체제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표명했다.

그런가 하면, 금년 1월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했다.

유럽의 동맹국들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미국의 일방주의가 되살아났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부시 대통령의 단순한 세계관으로 인해 국제정세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었다.

미국 예외주의 전통

다른 나라의 입장이나 정책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국가이익에 입각하여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일방주의라고 한다면,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의 일방주의는 ‘미국적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며, 미국적 가치가 보편적 가치이고, 미국 자체가 특별한 숙명을 지닌 특별한 국가라는 것이다.

유럽으로부터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정착한 후 시작된 국가건설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지긋지긋하게 보아 온 권력정치에 종언을 고하고, 세계의 모범국가로서 도덕과 이상이 살아있는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표출했다.

이러한 미국적 도덕주의는 ‘몬로 독트린’과 같이 19세기 초 국제사회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고립주의로 나타나는가 하면, 19세기 말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의 이념적 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립주의든, 팽창주의든 양쪽을 관통하는 줄기는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땅에서 유럽의 전제 왕정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민주주의 정치를 실현했다는 미국인들의 자부심, 그리고 특별함이었다. 고립주의나 팽창주의 모두 다른 나라의 입장이나 정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방주의적이다.

적극적 국제주의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참전이라는 미국적 이상주의의 논변이었다. 한편 이전까지 금기시했던 유럽에 대한 군사개입은 미국적 예외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의 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일차적 목표는 국내 문제에 두어야 한다는 ‘제퍼슨 주의’의 신념이 여전히 강했다. 1930년대 대공황에 따른 국내 경제위기의 가중,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안보위기의 증가 등으로 인해 미국은 또다시 고립주의의 승리를 경험해야 했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외교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보다는 미국의 특별함에 바탕을 둔 미국 자신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일방주의적이었다.

2차 대전을 계기로 소련과 함께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미국의 이상과 이익을 타국가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추진하느냐를 놓고 고민했다. 미국의 개입 범위를 줄이고 미국의 가치를 대내적으로 공고화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국익을 추구해 나갈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 끝에 국제주의로 방향을 잡았다.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유세계의 리더로서 미국적 가치의 우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미국의 리더십을 따르는 국가들에 대해 적극적인 정치ㆍ경제적 지원을 행하는 관대함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하고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탈냉전기는 ‘비정상적인’ 시대인 만큼 미국이 양극 세계가 아닌 단극 세계의 질서와 규범을 만들고 이를 적극적으로 집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 제기되었다.

이렇듯 일방주의를 강화하라는 주문은 부분적으로 수용되었다. 미국은 유엔이라는 범세계적 국제기구를 앞세워 국제질서 유지에 나서되, 통상 문제에 관해서는 과거 자유진영 국가들에게 보여 주었던 관대함을 포기하였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는 수사적인 면에서 일방주의보다는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다자적 해결을 선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입과 확대(engagement and enlargement)’ ‘공세적 다자주의(assertive multilateralism)’ ‘평화를 위한 동반자 관계(partnership for peace)’ ‘전략적 동반자 관계(strategic partnership)’ 등 클린턴 행정부는 화려한 수사를 창출했다.

그러면서도 나토의 유고 공습, 그리고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보스니아와 북아일랜드 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국적 일방주의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탈냉전후 논쟁

클린턴 집권 초기의 다자주의 선호 정책은 집단체제를 주장한 트루먼 정권 초기와 유사했다. 트루만 대통령은 세계 문호 개방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였으나 소련과의 적대 관계가 형성되면서 나토 창설을 통하여 유럽에 대한 직접적 군사개입으로 선회하였던 것이다.

미국 외교가 역사적으로 상당 부분 그러했듯 클린턴 행정부 역시 이상주의적 수사로서 현실주의적 국가이익을 감추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일방주의가 클린턴 대통령의 화려한 외교적 수사 속에 감춰져 있었다.

2001년 등장한 부시 행정부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의 ‘방만한’ 국제주의, 그리고 ‘모호한’ 외교적 수사를 거부했다. ‘미국적 국제주의(American internationalism)’로 표현되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기조는 불필요한 국제분쟁 개입을 자제하고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에만 관여하며,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만이 국제사회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했다.

무기력하고 비효율적인 유엔보다는 미국의 ‘힘’이 국제 질서에 보탬이 되고, 미국의 힘에 대한 믿음은 미국이 방만하게 국제 문제에 개입하여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선택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개입하여 반드시 성공을 거둘 때만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합의 자체에 의미를 두는 여러 국제협약들은 이를 지키지 않으려는 ‘불량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효과를 기대하기 곤란하므로 미국은 이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9ㆍ11 테러 사태가 터진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아직도 수많은 국제분쟁들이 유엔이 아닌 미국의 일방주의적 개입을 필요로 하는 역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일방주의는 복잡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힘에 대한 신념

전세계적으로 테러의 일차적인 표적이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테러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고 인식한다. 테러리스트들에게 허점을 보임으로써 다시 한번 테러를 당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심정은 그만큼 절박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과도한 일방주의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반 테러전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이 지나친 일방주의적 자세를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도 국제문제에 대해 점차 거리를 두는 신고립주의로 회귀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현재 국제사회에 부과된 어려운 숙제라고 하겠다.

김성한(金聖翰ㆍ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자문위원 명단

▲최영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

▲문정인 교수

▲박찬욱 교수

▲김성한 교수

■아메리카 핸드북 / 부시 외교적 명칭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은 취임 1년 여 동안 찬반 양진영으로부터 수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그만큼 논란이 많았다는 얘기도 된다.

2000년 대선 기간 중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공화당측 공약을 ‘신고립주의’라고 비난했다. 이에 부시 후보 진영은 ‘미국적 국제주의’라고 반박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 취임에 즈음한 12월 15일자 사설에서 ‘미국은 국제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출범 후 탄도미사일요격(ABM) 협정, 교토의정서 등 각종 국제 협약에 대한 반대ㆍ탈퇴를 추진하자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7월 31일 ‘미국 외교가 부식되고 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신고립주의에 ‘일방주의’라는 명칭을 추가로 찍었다.

이에 대해 리처드 하스 국무부 정책실장은 “부시 정책은 미국의 이익에 맞게 조약 하나하나를 검토하는 맞춤식 다자주의(a la carte Multilateralism)”라고 명명하며 반박했다.

9ㆍ11 테러 후 부시 대통령은 9월 20일 의회 연설에서 대 테러 전쟁과 관련, ▦테러조직뿐 아니라 비호국가로까지 확대 ▦전세계 테러조직을 근절할 때까지 지속 ▦지원 여부에 따라 동맹국과 적국을 가른다는 등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를 ‘부시 독트린’으로 명명하고 향후 미국 외교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다시 ‘흑백논리적 2분법’이라는 비판을 가했다. 전 세계를 양분해 선악으로 가르는 냉전 이전의 전통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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