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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준비하는 사람들 / '템플스테이' 송광사 정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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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을 준비하는 사람들 / '템플스테이' 송광사 정일스님

입력
2002.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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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손님이라고 달리 준비할 게 있나요.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대중(大衆)으로 맞이할 겁니다.”매화와 산수유가 나란히 꽃을 피우기 시작한 13일 오후 전남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봄기운이 완연했다.

월드컵 기간 외국인 40여명을 ‘템플 스테이(Temple Stay)’에 초대한 총무국장 정일(正一ㆍ51) 스님의 얼굴에도 여유로움이 넘쳐 흘렀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손님 맞이로 분주했다. 세면장 보수 공사 현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외국인이 산책할 대나무 숲을 거닐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 이후 무려 18명의 국사(國師)를 배출,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리는 송광사.

정일 스님은 “이 곳은 무려 20년 넘게 겨울철 국제선원을 통해 수백명의 파란 눈 스님들을 길러 냈던 곳”이라며 “월드컵 방문객 몇 십 만명 중 이곳에 머물 40여명이야 말로 정말 복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자랑 삼아 얘기했다.

실제로 송광사는 조계종 산하 25곳을 포함, 전국 31개 산사(山寺) 중 템플 스테이에 가장 큰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만큼 외국 손님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는 의미다.

우선 통역 문제는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영국 출신 혜안(慧眼)스님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3개 국어에 능통하다.

또 러시아, 방글라데시, 중국, 일본 출신 스님들이 월드컵 기간 ‘통역 도우미’로 나설 예정이다. 외국 손님을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은 목욕탕과 샤워장을 약간 넓히는 것 이외에는 없다.

그렇지만 외국인 손님에게 철저히 한국식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외국인을 위해 절에 침대와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자는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외국인들이 정작 감탄했던 것은 불교 고유의 참선(參禪)과 차담(茶談)이었다.”

저녁 9시에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 외국인은 다음날 새벽3시, 목탁과 염불소리에 눈을 떠야 한다. 4시30분, 종고루(鍾鼓樓)에서 울러 퍼지는 범종소리를 들으며 대웅전 법당에 입장, 100여명의 스님들과 함께 새벽 예배를 본다.

졸린 눈으로 30분 동안 가부좌를 틀어 참선을 끝내고 나면 깨죽이나 떡국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식사를 마친 후 고즈넉한 대나무 숲과 감로암, 불로암 등 암자 2곳을 거치는 3~4㎞ 산책로를 거닐며 1시간 가까이 상념에 잠긴다.

외국 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의 불교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자리도 마련된다.

사찰 곳곳에 늘려있는 국보 4점, 보물 11점, 유물 2,000여점 등도 호기심거리다. 7가마 분량의 밥이 들어가는 비사리구시, 쌍향수, 능견난사 등 명물도 많다.

정일 스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외국인 비위를 맞출 생각은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템플스테이를 희망하는 외국인은 송광사 홈페이지(www.songgwangsa.org)나 템플 스테이 홈페이지(www.templestaykorea.net)에서 신청양식을 작성하고 신용카드로 3~5만원에 이르는 1박2일 수련비를 지불해야 한다.

“한국 문화 체험에 여관비 만한 3만원, 결코 아깝지 않을 겁니다.” 정일 스님은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얘기를 끝맺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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