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25명의 탈북자가 오늘(18일) 우리나라에 온다.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하여 모든 난관을 헤치고 한국에 입국하게 된 것은 온 국민이 찬사를 보낼 일이다.또한 그들을 도와준 NGO들, 그들의 한국행을 가능케 해준 중국, 스페인 및 필리핀 정부는 우리의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
이번 일에 발 벗고 나서 탈북자들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외교활동을 벌인 우리 정부도 칭찬해 줄만 하다.
이번 25명 탈북자들의 일이 해피 엔딩으로 일단락 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이것이 탈북자 전반에 관련된 문제의 끝이 아니고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한편으로는 탈북자의 대량유입을 예고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나머지 탈북자들이 체포나 강제송환 등의 두려움을 겪어야 하는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동시에 이는 북한 정치의 대 변혁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이 햇볕정책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남북간의 정상회담이 있은 이후 그 여파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탈북자들이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받아들여 주는데 인색하였다.
탈북자들은 쫓는 북한, 단속하는 중국, 외면하는 한국 사이에서 불안하고 보호 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자구책을 찾아야만 했다.
이제나마 한국이 탈북자 문제에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이 문제가 워낙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으므로, 이를 좌시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가능성도 거의 없어졌으므로 한국 정부로서는 크게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탈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피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점점 더 능동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고 대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25명이란 숫자의 탈북자들이 한꺼번에 한국에 오는 의미는 자못 크다. 무엇보다 이들이 빙산의 아주 작은 일각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북한의 미래에 관해 중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독의 체제변화는 주민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결코 탈북자들의 대량 ‘남조선행’에 대하여 수수방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막는다고 주민의 탈북과 그들의 한국유입을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그때그때 임기응변 식의 대응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탈북자들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번 탈출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 의사 노르베르트 풀러첸은 “탈북자들이 지구상의 어느 대사관에 진입하게 될 것임을 확신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베이징의 여러 외국 대사관들에 수십명씩의 탈북자들이 수시로 진입 농성하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북한에게는 체제의 위협감을, 중국에게는 외교적인 딜레마를, 한국에게는 정치적인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다.
정부는 먼저 탈북자 중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천명하고 그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과거 탈 동독인들에 대한 서독의 정책이었고, 그것은 결국 통일을 앞당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둘째, 탈북자와 관련된 중국과의 협의와 양해이다. 중국이 현실적인 이유로 모든 탈북자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면 선별적으로라도 그것이 가능한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이 문제와 관련된 북한과의 협상이 바람직하다. 옛 서독 정부는 동독인의 서독 정착을 위하여 현금을 지불한 일도 있다.
북한에 대한 물적, 경제적 지원이 탈북자의 안전과 자유의 대가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25명의 탈북자 입국은 이 문제에 대한 근본대책을 세울 때임을 알려 주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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