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지식인은 수고스럽게도 늘 시대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물론 여기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유 감이라는 지식인의 선언적 몸짓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시대라는 풍경의 조직에 있다. 시대정신(Zeitgeist)이란 말에는 벌써 남루한 느낌이 묻어난다.
아니 그 말에는 생생한 현존의 감각보다는 외려 그 말을 잃어버린 세계를 향한 쓸쓸한 회한이 느껴진다. 그러나 어쨌든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옮겨 적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말이 시대임엔 분명하다.
역량 있는 문화평론가이자 사회학자인 김종엽의 ‘시대 유감’(문학동네 발행)은 그렇게 옮겨 적은 시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그가 그동안 여러 지면에 쓴 짧은 ‘문화 평론’ 글을 모아 묶어낸 것이다. 당연히 책 제목은 그렇게 묶인 글을 꿰는 하나의 관념을 압축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독서취미와 육아에서 얻어낸 시시한 발견에서부터 시쳇말 그대로 항간에 떠도는 온갖 유행과 농담에 이르기까지, 김종엽은 그간 그가 살아온 시공간의 뼘 속에서 벌어진 갖은 문화적 사태를 성찰한다.
그것은 대상이 된 문화적 현상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시대라는 이미지를 얻어내려는 데 있다.
언제부터인가 문화평론은 대중문화를 세련되게 소비하는 가이드로 여겨지고 있다. 아니면 젠체하기 좋아하는 지식인들의 광범위한 자기애의 취미 평론이 되어버렸다는 핀잔도 있다.
실상 문화평론에 대한 널리 퍼진 통속적인 인상 한복판에는 거드름피우는 냉소적인 지식인의 반면이 있다.
이런 세간의 문화평론을 둘러싼 혐의는 문화평론이란 직함을 단 필자 같은 지식인에겐 여간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대 유감’은 문화평론을 둘러싼 시중의 시비에 아랑곳 않는다. 그리고 문화 읽기를 통한 시대 읽기라는 소박한, 그러나 슬슬 잊혀지고 있는 글 쓰기를 보여준다.
세계는 없다, 시대는 허구다 운운의 냉소적 선언이 만연한 때에 사회란 무엇인가, 시대란 어떻게 현재하는가 따위를 캐묻기란 난감한 일이다.
더욱이 문화 평론의 현장에서 그런 물음을 존속시키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 유감’은 그 어려운 일을 마다 않는다.
‘시대 유감’은 유감스러워할 만한 시대가 없어진 1990년대 이후의 사회적 풍경을, ‘시대’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두고 시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화평론의 책무란 걸 어떻게 상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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