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육아의 풍속사/도서출판 사람과 사람/카트린 롤레ㆍ마리 프랑스 모렐 지음/나은주 올김/1만8,000원.아프리카와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여러 지역에서는 산모가 웅크린 자세로 아이를 낳았다. 고대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산모를 붙잡고 산파가 아기를 받았다.
고대 중국에서는 산모가 사람들로부터 마사지를 받는 가운데 종이 위에 서거나 반쯤 웅크린 자세로 아기를 낳았다. 지금처럼 누워서 아기를 낳는 방식은 인간의 신체구조상 적합한 자세는 아니었다.
의사가 분만실에 들어가면서 처치가 편리하도록 산모에게 누워 출산할 것을 요구한 것이 17세기 이후의 일이니, 그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조차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아기를 낳는 것은 보기 힘든 모습이었으며 지역에 따라, 민족마다 독특한 출산 방식이 있었다.
‘출산과 육아의 풍속사’(사람과 사람 발행)는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출산과,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기르는 지구촌의 생활풍속과 문화를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조명한 책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아동문제 연구가이자 역사학자, 사회학자인 카트린 롤레 베르사유-생캉텡대 교수와 인류학자인 마리 프랑스 모렐이 함께 쓴 책으로 공간적으로는 프랑스에서 남미의 아마존까지, 시간적으로는 그리스ㆍ로마시대로부터 20세기말까지가 관찰 대상이다.
책은 아이가 태어나고 이름이 지어지며 젖을 먹고 사회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보여준다. 그런 과정 역시 지역에 따라, 민족에 따라, 시기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거기에는 모두 그럴만한 사회적ㆍ문화적 이유가 있으며 따라서 어떤 방식이 더 우등하고, 열등한지를 밝히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게 책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책은 10여년 전부터 문명이 가장 발달한 유럽에서, 문명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문화권의 육아방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에 주목한다.
그 결과 유럽과 다른 지역의 육아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즉 유럽의 육아법이 아기의 위생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나머지 가능한 한 아이와 다른 사람의 접촉을 금지하는 반면, 다른 지역은 엄마와 아기가 살을 맞대고, 아기가 원할 때마다 젖을 물리며, 엄마가 틈틈이 아이를 만져주고 업거나 안아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 같은 차이는 아이의 사회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유럽에서는 아이를 가능한 한 빨리 동물과 구분시키려고 상당히 엄격한 방식으로 키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배내옷으로 감싼 뒤 서있는 자세에 익숙하도록 했고 기지 않도록 했으며, 일찍부터 걸음마나 말문이 트이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아이가 너무 빨리 독자성을 갖지 않도록 애썼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유럽에서는 육아의 주체가 엄마였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엄마의 역할이 아기의 보조자일 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책은 유럽의 위생중시 육아법이 유아 사망률을 현격히 낮추는데 큰 공헌을 한 사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럽 이외 지역의 육아법이 엄마와 아이의 심리적 정서적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는 더 효과적이라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지구촌 여러 민족의 출산과 육아 풍속을 지나치게 병렬식으로 나열함으로써 독자들이 주제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 문화를 신봉하는 요즘의 젊은 부모들에게 우리 전래의 출산, 육아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는 충분히 제공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