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3월14일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독일 울름에서 태어났다. 1955년 몰(歿).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에서 하급 검사관으로 일하던 26살 때, 아인슈타인은 빛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광량자 가설’로 알려지게 될 첫 논문 ‘빛의 발생과 변환에 관한 발견방법적 관점에 대하여’는 뒷날 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겼다. 빛의 속도는 어떤 경우에도 일정하다는 전제 위에서 쓰여진 더 중요한 논문 ‘운동물체의 전자기학’은 특수 상대성이론이라는 아주 낯선 인식론의 문을 열었다.
빛의 문제에서 출발한 특수 상대성이론은 중력의 문제를 껴안으며 일반 상대성이론으로 약진했고, 이 새로운 세계관의 낯섦이 어느 결에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인류의 오랜 미몽을 깨우고 자신들의 사고와 문명에 빛을 던진 예언자임을 알았다.
상대성 이론은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4차원의 시공간으로 결합함으로써 뉴턴 이후의 물리학만을 허문 것이 아니라 칸트 이후의 철학적 사고를 전복시켰다.
독일 스위스 미국 국적을 차례로 얻었고, 두 여자와 결혼했으며, 만년에는 이스라엘 대통령직을 고사한 20세기의 지성 아인슈타인은 단순히 탁월한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의식한 진짜 지식인이기도 했다.
“외적인 강제가 개인의 책임을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완전히 면제해줄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특별한 도덕적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과학의 사회적 책임’)거나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무정부주의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
이 악을 제거하는 길은 사회주의 경제를 세워 사회 전체를 위한 교육 체계를 수립하는 길 뿐이다”(‘왜 사회주의인가’)라는 발언들은 그가 만년에 다다른 사상의 일단을 보여준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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