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금산군)과 전북(완주군)을 가르는 언덕, 배티재에 잠시 섰다.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코 앞에 다가왔다.대둔산(大芚山ㆍ해발 878㎙)이다. 산 같이 생기지 않았다. 그냥 돌뭉치이다. 편편한 넓적 바위가 아니라 대나무의 순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친 뾰족돌이다.
‘저 산을 어떻게 오를까?’ 보는 것만으로도 땀이 난다.
2개도(충남, 전북) 3개 시군(논산시, 금산군, 완주군)에 걸쳐 있는 대둔산에는 모두 6곳의 등산로 입구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쪽이다.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밀집해 있는데다 산의 8부 능선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이 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간판의 식당가를 지나면 매표소. 길은 그곳에서부터 하늘을 향한다. 호흡조절이 필수. 정상에 오를 때까지 단 한번도 평지나 내리막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협곡으로 난 등산로는 돌계단과 돌언덕의 연속이다. 산행 코스가 짧고 난코스마다 철다리와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약 1시간을 헉헉거리며 오르자 오롯한 바위가 나타난다. 동심바위이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바위의 모습에 취해 사흘간 바위 아래 굴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동심바위부터는 힘이 들지 않는다. 경사가 완만해진 것이 아니라 오밀조밀한 산행의 재미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즐거움이 금강구름다리. 임금바위와 입석대라는 두 개의 바위 봉우리를 연결하는 높이 81㎙, 길이 50㎙의 철다리이다.
견고하게 바위에 고정된 철다리이지만 다리 가운데에서 몸을 움직이면 흔들린다. 마침 바람이라도세게 불어주면 더 흔들린다. 오금이 저린다.
대부분 난간을 붙잡고 눈을 감은 채로 서둘러 다리를 건넌다. 발 아래를 내려다 보거나 주위를 둘러보는 뱃심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나 금강구름다리는 시작에 불과하다.
다리를 건너면 약수정. 부침개와 막걸리를 파는 매점이 있다. 잠시 다리를 쉰다. 약수정부터는 산행객들의 복장이 복잡해진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관광객이 합류하기 때문이다. 하이힐에 치마를 입은 여인은 물론 넥타이를 맨 신사들까지 눈에 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삼선구름다리가 기다린다. 삼선구름다리는 다리라기 보다는 계단이다. 하늘로 치솟은 와완바위의 꼭대기까지 교각이 없는 다리계단을 덩그러니 매달아 놓았다.
각도는 약 50도. 오금이 저리는 강도에 있어 금강구름다리의 두 배가 넘는다. 계단은 모두 127개.
쉽게 생각되지만 막상 올라보면 그렇지 않다. 계단의 수가 한꺼번에 뛰어오르기에는 조금 버거운 데다가, 중간에 잠시 쉬자면 허공에 떠있다는 공포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세 명의 도시 처녀들이 앞서 출발했다. 앞의 두 명은 그런대로 담이 큰 듯 쉽게 올랐다. 마지막 한 명이 문제였다.
계단 위에서 서너 번을 머뭇거리다가 살갗이 아플 정도의 거친 돌풍을 만났다. 바로 울음을 터뜨린다.
삼선구름다리 이후로는 더욱 가파른 돌길이다. 아예 길 옆으로 쇠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모두 붙잡고 오른다.
사람의 손에 닳은 난간은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오르며 쉬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덧 정상인 마천대이다.
‘하늘을 대하는 봉우리’라는 의미의 마천대에는 커다란 정상탑이 있다. 대둔산 개척 기념탑이다.
높이 10㎙가 넘는 탑으로 해발 800㎙ 이상의 산 정상에 만들어진 조형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클 것이다.
1972년 4월이라고 준공연도가 쓰여 있다. 이미 30년전에 대둔산에 시설이 놓여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햇살을 받는 남쪽 등산길은 완연한 봄이었는데, 탑 반대편의 그늘 깊은 북쪽 기슭은 아직 눈밭이다.
마천대에서 내려다 본다.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발 아래로는 주차장을 포함한 관광지구 시설과 케이블카, 구름다리 등이 펼쳐진다.
바위 산에 조성한 거대한 놀이공원 같다. 눈을 들면 봉우리의 파도가 펼쳐진다. 덕유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맑은 날이면 진안의 마이산, 지리산 천왕봉까지 볼 수 있단다.
울음을 터뜨렸던 처녀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한다. 아마 남자 친구인 듯. 뾰족돌산의 꼭대기에 섰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한 모양이다.
“진짜 정상이라니까.” 목소리가 날아갈 것 같다.
● 가는 길
승용차라면 충남 금산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쉽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금산나들목에서 빠지면 바로 금산읍.
68번 지방도로를 타고 진산면을 들렀다가 17번 국도를 이용, 배티재를 넘으면 바로 대둔산 입구이다.
추부나들목으로 나와 복수-진산을 거쳐도 된다. 전주터미널에서 대둔산행 직행버스가 하루 8회, 대전서부터미널에서 6회, 대전동부터미널에서 2회 운행한다.
대둔산 산행은케이블카를 이용한 관광객과 합류하기 때문에 주말 낮시간을 피하는 것이 좋다. 주말이라면 이른 아침에 등산을 시작하거나 주중을 택하는 것이 좋다.
대둔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63)263-9949
● 쉴 곳
대둔산 입구에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다. 여관, 민박은 물론 콘도 형태의 민박도 있다. 대둔산온천관광호텔(063-263-1260)이 가장 큰 시설.
1991년에 지어진 호텔로 온천 사우나가 유명하다. 대둔산 온천은 지하620㎙의 암반층에서 끌어 올린 약알칼리성 유황온천.
물도 좋지만 진흙한방사우나, 쑥탕 사우나, 맥반석 사우나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인근배티재 정상에 있는 진산자연휴양림(041-752-4138)도 이용해 봄직하다. 다양한 크기의 통나무집이 있다. 크기에 따라 4만 원에서 15만원까지 받는다.
● 먹을 것
대둔산 자락의 산나물을 재료로 한 산채비빔밥이 맛있다. 산 입구에 식당이 도열해있는데 어느 집이나 산채비빔밥을 만든다.
조금 특별한 먹거리를 원한다면 금산쪽으로 향하면 된다. 금산은 금강이 흐르는 곳.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이용한 맛있는 음식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도리뱅뱅과 어죽. 도리뱅뱅은 빙어를 튀겨 양념을 얹은 음식. 빙어를 마치 똬리처럼 후라이팬에 놓기 때문에 독특한 이름이 붙었다.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어죽은 잡고기를 갈아 뼈를 걸러내고 쌀을 넣어 끓인 뒤 수제비를 넣은 것. 은근한 맛이 일품이다. 제원면 천내리 금강변에 전문 음식점이 밀집해 있다.
대둔산= 글 권오현기자
koh@hk.co.kr
■태고ㆍ안심ㆍ영주寺… 명산에 名刹이
명산이 꼭 품고 있는 것이 있다. 절이다. 대둔산도 예외는 아니다.
깊은 숲내음이 아련한 향내음과 어우러진다. 고찰 태고사를 비롯해 안심사, 영주사 등이 대둔산 자락에 있다. 산행 길에서 만나는 단아한 절집. 즐거움이 더욱 크다.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 원효가 12승지의 하나로 꼽을 정도의 명당에 위치하고 있다.
원효대사가 이 터를 발견하고는 너무 기뻐 3일간 춤을 췄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과거 대웅전만 72칸에 이르는 대찰이었는데 6ㆍ25전쟁때 대부분 불에 탔다.
현재의 절집은 그 이후 지어졌고 지금도 옛모습을 복원 중이다.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절로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서 도를 닦기도 했다.
태고사는 대둔산의 주능선에 있다. ‘잠깐 들러볼까’ 라는 마음이라면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다. 절 입구에서 약 2시간 정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안심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절. 부처의 사리 10과와 치아사리1과를 봉안했다고 한다.
경내 30여 채의 건물과 12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는데 역시 6ㆍ25 때 모두 소실되고 석재만 남아있었다.
1990년 이후 중층불사가 이루어져 적광전과 보궁, 대웅보전, 일주문 등이 복원됐다. 깔끔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풍긴다.
영주사는 황산벌전투에서 피를 흘린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창건된 절. 정확한 창건연도는 알 수 없지만 원래 이름은 영은사였다.
이 절 또한 6ㆍ25때 공비의 은거를 막기 위해 아군이 불을 질러 모두 소실됐다. 지금의 건물은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다.
명물이 있다. 노천 오백나한이다. 나한 하나의 크기는 갓난아이 정도. 절 한쪽의 절벽에 모셔져 있는데 모두 생김새가 다르다.
통일된 것이 있다면 대부분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닮은 나한을 찾아본다.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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