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사회’ 봄호를 읽다가 황인숙(黃仁淑)씨의 짧은 시 ‘밤과 고양이’를 만났다.‘고양이가 운다/ 자기 울음에 스스로 반한 듯/ 부드럽게/ 고양이가 길게 울어서/ 고양이처럼 밤은 부드럽고 까실까실한 혀로/고양이를 핥고/ 그래서 고양이가 또 운다.’
황인숙씨는 고양이의 시인이다.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고양이로’로 시작하는 그녀의 초기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는 고양이의 때로는 나른하고 때로는 경쾌한 몸놀림을 발랄한 언어에 담아낸 빼어난 작품이다.
1920년대 시인 이장희(李章熙)가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고양이의 생김새에 주목했다면, 황인숙씨는 고양이의 날랜 움직임에 주목했다.
‘밤과 고양이’에서 시인이 시상(詩想)의 실마리로 삼은 것은 고양이 울음이다. 고양이는 물론 낮에도 울겠지만, 시인은 밤의 울음에서 착상을 얻는다.
사실 고양이는 대표적인 야행성 동물이기도 하다. 독립과 고독을 상징하는 동물답게, 고양이는 어둠이 사위(四圍)에 내려앉은 뒤에야 원기(元氣)를 뽐낸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특히 밤에 듣는 발정한 도둑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와 너무 닮아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 울음은 독립을 얻기 위해 감수하는 고독의 울음인 것도 같다. 그러나 시인은 그 울음에서 부드러움을 발견한다. 그 울음은 고양이가 저 스스로 반할 만큼 부드러운 울음이다.
이 시에서 밤과 고양이는 서로 소통한다. 고양이의 울음이 안쓰러워 밤은 고양이를 핥아주고, 그 핥음에 격려 받아 고양이는 또 운다.
밤은 고양이의 친구이자 수호천사이자 어머니다. 시인의 상상력 속에서 밤의 혀는 고양이의 혀처럼부드럽고 까실까실하다.
부드럽고 까실까실하다? 고양이의 핥음을 겪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동물의 혓바닥에는 많은 가시돌기가 있다.
고양이는 그 가시돌기로 먹이의 뼈나 가시를 발라 먹는다. 까실까실하다는 것은 그 가시돌기의 느낌이다. 그러나 가시돌기 이외의 부분은 부드럽다.
그러니 고양이의 혀는 부드럽고 까실까실하다. 이런 이중적 감각은 우아하면서도 이기적인 고양이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부드럽고 까실까실함으로 밤은 고양이를 어르고 달랜다. 위로 받은 고양이는 다시 울며 응석을 부린다.
그 울음은 나르시시스트의 울음이다. ‘밤과 고양이’를 읽고 나니, 앞으로는 밤에 듣는 고양이 울음이 좀 정겨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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