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제8회 월드컵은 1회 대회가 열린 지 36년 만에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에서 열린 역사적인 대회이다. 애초 유럽 대륙 축구와는 수준이 다르다며 국제축구연맹(FIFA) 창설에 관여하지 않았던 잉글랜드가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것은 50년.그러나 미국에 0_1로 패하는 등 수모를 겪었고 54년 대회 8강, 58년 대회 무승, 62년 대회 1승의 성적 밖에 올리지 못했다. 자국의 실력에 안주, 세계 수준에 뒤 처진 이유도 있었지만 월드컵보다 국내리그를 더 중시하는 전통, 또 클럽팀들의 대표팀 훈련에 대한 비협조가 더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선수 선발과 훈련에 대해 전권을 위임 받은 알프 램지 감독은 팀 전력강화에 나서 65년 오스트리아전(2_3패)이후 16전 무패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탔고 결국 월드컵 우승을 이뤄 냈다.
그러나 평가는 그리 좋지못했다.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서는 전반 35분 주심이 반항적인 표정이 비신사적이라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아르헨티나 주장 라틴을 퇴장 시킨 덕에1_0으로 승리했다.
서독과의 결승전서는 연장 전반 10분 허스트의 슛이 크로스바 맞고 수직으로 떨어진뒤 필드로 튀어 나온 것을 주심이 골로 인정, 잉글랜드의 4_2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 월드컵 결승전 사상 유일하게 해트트릭을 기록한 허스트의 이 슛은 지금은 골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사상 처음 29개국에 위성 중계돼 4억명이 결승전을 지켜본 이 대회서 우루과이는 준결승서 2명이 퇴장 당해 서독에게 패했다. 대회 4강을 모두 유럽팀이 차지하자 남미 국가들은 ‘유럽의 음모’라고맹비난했다.
이 대회 돌풍의 팀은 북한이었다. 소련에 3_0으로 패한 북한은 칠레와 1_1, 이탈리아와 1_0을 기록하며 8강에 올랐다. 특히 이탈리아전에서 5명이 순식간에 문전으로 쇄도해 한일(一)자 대형을 이루어 상대 수비를 교란하는 ‘사다리 전법’으로 관중들의 찬사를 받았다.
포르투갈과의 8강전서 3-0으로 앞서다 모잠비크 출신의 에우제비오에게 4골을 허용하며 3_5로 무너졌지만 북한의 공격적이고 깨끗한 플레이는 당시 영국과 유럽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유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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