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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정글쥬스 - 한탕에 목숨건 양아치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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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정글쥬스 - 한탕에 목숨건 양아치 듀오

입력
2002.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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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물론 영화적 정의다. 약간의 풍류와 카리스마를 가진 게 건달, 남성적 파워가 강한 게 조폭이라면 양아치는 이들보다 더 어리고, 덜 조직적이며, 더 많이 얻어 터진다.깡패 계급 중에 가장 하류층에 속하는 것이 아마 양아치일 것이다. 영화 ‘정글쥬스’(감독 조민호)는 아예 “우리는 양아치 영화”라고 단정한다.

영화의 이런 자기소개 방식은 물론 주인공의 스타일까지 이야기 흐름에 폭 넓게 투사된다.

청량리 윤락가에서 윤락녀들과 “오빠, 동생”하며 지내는 두 양아치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

음습한 매음 공간이지만 이들에겐 부모가 살고, 친구가 있는 삶의 공간이다. “저 언니 몸매 참착하게 생겼다”며 늘씬한 여자를 보고 눈요기를 하는 공간도 바로 청량리이다.

그런 이들에게 ‘XX’ ‘X같이’ 같은 욕은 일종의 접두사나 접미사로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 두루 쓰이는 친근한 용어이다.

코흘리개를 겨우 면한 초등학교 조무라기들과 어울려 순진한 아이들 ‘삥’ 뜯는 게 이들의 소소한 밥벌이 수단.

그저 하루 하루 때우고 사는 두 양아치와 ‘사업을 하고 싶은 깡패’ 민철(손창민)이 만나면서 사고가 난다.

뭔가 크게 한건 해보고 싶은 민철은 보스와 담판, 드디어 마약을 팔러 기태와 철수를 데리고 첫 사업에 나서지만 실패.

경찰이 들이 닥치고, 보스를 마약뭉치를 쓰레기 통에 던진다. 그 마약 뭉치가 기태와 철수의 손에 들어오면서 일은 커진다.

경찰과 민철 일당에게 쫓기면서도 ‘한 건’의 꿈을 버릴 수 없는 두 양아치는 윤락녀 멕(전혜진)과 마약을 팔러 부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부산 역시 순진한 양아치들이‘한 재산’을 건지기에는 만만찮은 곳이다.

‘태양은 없다’ ‘넘버 3’ 등에서 보여진 20대 초반 깡패들의 삶에 대해 ‘비루하다’는 고고한(?) 표현이 어울린다면, ‘정글쥬스’의 기태와 철수의 삶은 아무거나 섞은 폭탄주처럼 뒤범벅, 그 자체다.

부모없는 기태가 엄마를 입밖에 내는 것은 중년 여자에게 몸을 팔 때(여자는 “아들, 빨리 와”라고 말한다)이고, 커튼 하나 사이로 남편은 이발하고 아내는 몸을 파는 이상한 이발소집 아들 철수는 막 ‘작업’을 마친 엄마에게 “이천만원만 꿔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 ‘소돔과 고모라’의 코믹판 같은 영화는 그러나 세상에 대해 어떤 시선도 보내지 않는다.

골프채로 머리통을 날리거나 칼로 손목을 쓱쓱 쓸어내는 장면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라’고 속삭인다.

매력적인 두 배우, 망가진 손창민, “어디서 저런 인물을 구했을까” 싶은 부산 자갈치 공주파 등 조연들까지 인적 재료는 신선하다. 그러나 산만한 구성이 재료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어떤 영화들은 ‘피’로 카타르시스를 만드는 데 반해, 이 영화는 복부 팽만감을 일으킨다. ‘정글쥬스’는 여러 종류의 약을 섞어 만드는 즉석 환각제를 일컫는 속어. 3월22일 개봉.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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