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 스님’ 중광(重光)이 9일 밤 11시20분 경기 곤지암의 토굴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세수 67세, 법랍41세.중광은 시(詩) 서(書) 화(畵)로 우리의 한 시대를 놀고 간 예인이었다. ‘한 세상 큼직하게 농락한’ 자유인이자 기인(奇人)이었다.
‘반은 미친듯, 반은 성한듯/ 사는 게다.//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는 산산이 부서지고/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거야/ 나는 걸레’. 흥이 도도해진 술자리에서 그는 숟가락을 거꾸로 잡고 자작시 ‘나는 걸레’를 외쳤다.
필법을 무시한 채 마지막 획부터 거꾸로 써나가는 그의 글씨는 천진하고도 고졸한 서체를 탄생시켰다.
중광은 193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고창률(高昌律). 두 살 때 제주도로 건너와 제주중 2년을 중퇴한 것이 학력의 전부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63년 통도사에서 출가했다.
선 공부에 정진하며 조계종 종회 회원을 지냈지만, 여러 차례 자살 기도를 하는 등의 기행으로 79년 파문됐다.
이후 한국불교 연구의 대가인 루이스 랭카스터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에 의해 ‘Mad Monk’이라는 시화집이 소개되면서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 80년 영국 왕립아시아학회에서 ‘나는 걸레’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 창작도 했다.
무엇보다 중광을 동시대인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것은 언제나 세상의 통념과 허위를 조롱했던 면모 때문이었다.
막걸리통에 소주를 부어마시던 폭주와 줄담배, 땟국 절은 바지와 러닝셔츠 차림으로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던 그는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걸레를 자처했다. 그는 또 영화 ‘허튼 소리’ ‘청송가는 길’에도 출연했다.
수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해 조울증에 시달려온 중광은 98년 이후 백담사 등지에서 칩거하며 달마도만을 그려왔다.
정대(正大) 조계종 총무원장은 10일 오전 서울 중앙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조의를 표했으며 그와 절친했던 문화계 인사들이 빈소를 지켰다. 발인 13일 오전 5시 서울 중앙병원(02-3010-2295). 다비식 13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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