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이 얼마나 우아한 장르가 될 수 있는지를 그 누구보다 잘 보여준 사람은 움베르토 에코일 것이다.에코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은 고전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치밀한 추리기법이 어우러진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지적인 호기심과 문학적 상상력의 행복한 만남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는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51)는 ‘스페인의 움베르코 에코’로 불리는 작가다.
레베르테의 1993년작 장편소설 ‘뒤마 클럽'(시공사 발행)과 1990년작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열린책들 발행)이 동시에 번역 출간돼, 지식욕으로 가득 찬 독자를 유혹한다.
그저 복잡한 미스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전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독서의 전제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레베르테는 에코와 닮았다.
또한 ‘뒤마 클럽’은 ‘나인스 게이트’,‘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은 ‘언커버드’라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처럼 그의 흥미로운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로 제작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 뒤마 클럽/악마를 부르는 古書 세권 진짜 원본은 어느 것일까
‘뒤마 클럽’은 고서를 취급하는 책사냥꾼의 이야기다. 주인공 코르소는 유명한 서적상에게서 이상한 의뢰를 받는다.
서적상은 코르소에게 ‘악마를 부르는 교본’이라는 고서를 넘겨 주면서,“같은 책이 두 권 더 있다. 모두 찾아 세 권 중 어느 것이 원본인지 가려내 달라”고 부탁한다.
책을 찾아가는 곳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악마를 부르는 교본’에 그려진 삽화에 사건의 실마리가 있다고 직감한 코르소는 고서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작가는 코르소의 긴박한 추리 탐험과 ‘삼총사’를 지은19세기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문학관을 보기좋게 엮어 놓는다.
그는 뒤마를 빌어 숭고한 것으로 칭송받아 온 문학 창작 행위를 가차없이 조롱한다.
문학의 엄숙주의를 질타하는 듯하지만, 기실 그가 비난하는 것은 구성이 허술하고 밀도가 낮은 창작물이다.
“사실 문학 창작이라는 게 남의 것을 표절하는 행위와 다를 게 뭐가 있소? 뒤마는 프랑스 역사라는 이름의 광산을 중시했고, 그 테두리 안에서 지형을 변조해 가며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보물들을 거리낌없이 강탈했어요.”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그림에 얽힌 의문의 살인 체스게임에 열쇠가 있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은 미술 복원가의 이야기다. 주인공 훌리아는 체스 게임하는 모습이 담긴15세기 그림을 복원하던 중, 작품 속에서 한 개의 문장을 발견한다.
‘누가 기사를 죽였는가.’“이 문장이 500년 전의 살인사건과 관련됐기 때문에 그림에 그려진 체스 게임을 풀어야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훌리아의 선생 세사르의 해석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체스 게임을 풀어가는 동안 살인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작가는 중세의 그림 속 체스 게임과 현실의 살인 사건을 교묘하게 얽으면서 독자에게 현란한 지적 게임을 도발한다. 단, 책을 즐기려면 체스의 규칙을 아는 것이 필수 조건.
■두 출판사 공동마케팅
두 권의 책 뒷날개를 눈여겨 볼 것.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은 시공사의 ‘뒤마 클럽’을, 시공사의 ‘뒤마 클럽’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을 각각 소개했다.
다른 출판사의 책을 광고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두 출판사가 레베르테에 대한 공동 마케팅을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홍보, 판매에도 같이 힘을 모을 것이라고 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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