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귀퉁이의 책꽂이를 훑어보는데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1983년에 나온 그 책은 우리 근대경제사를 다룬 논문 모음집이었습니다.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는데 내용이 딱딱해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특별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없는 걸 보면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 책에 눈이 간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책값이 무려 5,000원이나 했기 때문이지요. 그때 나왔던 책의 가격은 대부분 3,000~4,000원 정도.
1,000원 정도 비쌌는데,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감안하면 비싸다고 할 수만도 없겠지요. 그런데도 살까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서점에 갈 때마다 서가에서 꺼냈다 집어넣었다를 반복하고, 몇번이나 훑어본 끝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책이 비싼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정도 분량이면 1만5,000원을 훌쩍 넘어갑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종이값이 30% 가량 올랐는데도, 책값은 10% 정도밖에 올리지 못했다는 출판사의 주장을 들으면, 책값이 비싸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종이값이, 원고료가 오르면 책값이 오르는 건 당연합니다. 다른 건 다 오르는데 책값만 올리지말라는 것은 억지일 겁니다.
그런데도 책값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19년 전 저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그 책에 비해 요즘 책이 너무 화려하고 호사스럽기 때문입니다.
여백도 적고 사진, 그림, 도표도 없이 거친 종이에 까만 글씨만 가득찬 책. 그에 비해 요즘책은 좋은 지질은 기본이요, 시원한 편집에 컬러사진과 도표가 가득합니다. 비주얼을 강화한 것이지요.
하지만 책을 사면서 부담을 느끼는 독자는 아직 많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지질이 나빠도, 컬러사진이 없어도 좋으니…”라고 합니다.
출판사는 “화려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으면 아무도 책을 사지 않을 것“이라며 현실을 모른다고 질책하겠지만, 독자를 먼저 생각한다면 이런 소리를 마냥 흘려 들을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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