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ㆍ환경단체 "토함산 경관 훼손" 반발 "어설픈 모형으로 실제이미지 훼손" 우려석굴암 모형 전시관 건립은 보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 또 다른 문화재와 환경 훼손 행위인가.
석굴암의 본사인 불국사가 지난해 10월 문화재청의 허가를 얻어 석굴암 인근에 모형 전시관 건립을 추진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보 24호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은 결로(結露ㆍ이슬맺힘)와 부식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로 보호막을 설치해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비싼 관람료를 내고도 내부를 볼 수 없어 불만이 높고, 스님과 일부 참배객들의 내부 출입으로 보존에도 문제가 많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근에 석굴암을 그대로 본뜬 실물 크기모형 전시관을 짓겠다는 것이 문화재청과 불국사측의 설명이다.
전시관은 석굴암에서 남동쪽으로 104㎙ 아래쪽에 지상 1층, 지하 1층120여평 규모로 5월께 착공될 예정이며 현재 불국사와 경남도청에서 세부 설계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에 맞서 몇몇 문화재 전문가와 환경 단체가 이달 초 '석굴암ㆍ토함산 훼손 저지대책위원회'(대표 이상해 성균관대교수)를 결성, 범 문화계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논란의 최대 쟁점은 모형 전시관이 들어설 장소.
이상해 교수는 "석굴암의 문화적 가치는 토함산과의 조화에도 있다"며 "바로 턱 밑에 전시관을 지으면 주변 환경을 망치는 것은 물론,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지정을 재고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전시관 건립이 필요하다면 경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가 당시 심의를 맡았던 문화재위원회 1분과 위원장 김일진 영남대 명예교수는이에 대해 "대체물인 모형을 동떨어진 곳에 짓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전시관 터는 석굴암 앞 큰마당과 그 7.5㎙아래 공터 사이의 경사지로, 지붕 높이를 마당과 같게 하고 흙을 덮는 등 '생태건축' 개념을 도입하면 주변 환경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회는 그러나 어설픈 모형이 석굴암 자체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석굴암 전문가인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어떤 첨단 기술을 동원해도 석굴암의 아름다움은 결코 흉내낼 수 없다"면서 "더구나 화강암이 아닌 재료를 쓴다니 조잡한 흉물이 될 것이 뻔해 오히려 석굴암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형은 '제2의 석굴암'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관람객들이 최소한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면서 "재료와 예산 문제는 앞으로 더 논의해 본래의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노태섭 문화재청장은 7일 "3월 중순 각계 인사들을 석굴암 현지에 초청해 설명회를 갖고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장소를 석굴암에서 좀 더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정도의 수정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대책위원회는 "토함산에는 절대 안된다"며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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