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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사후 피임약 시판 한달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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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사후 피임약 시판 한달째

입력
2002.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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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서울 강남의 C산부인과의원.고교 2년인 A양은 최근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후 임신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다 이 의원을 찾았다.그러나 A양의 태도를 본 의사 B씨는 당혹스러움을감추지 못했다. 처방을 위해 묻는 ‘은밀한’ 질문에 당차게 대답하고 수줍음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 B씨는 “오히려 40~50대 중년여성들이 부끄러워하는 데 반해 젊은 층은 당당하다”고 전했다.

A양이 산부인과를 찾았던 주목적은지난 1월21일 시판된 논란의 피임약인 ‘노레보정’ 처방받기 위해서였다. ‘사후피임약’으로 널리 알려진 노레보정은 성관계를 가진 뒤 임신을 막기 위해 먹는응급피임약. 시판 전부터 관련 기관ㆍ단체간에 불꽃 튀는 논쟁이 붙었던 문제의 약이다.

▼처방 실태

지난 한달여 동안 C의원이 처방한 노레보정은 모두 4건. 이 가운데 1건은 기혼여성이었지만 나머지 3건이 모두 10대 청소년이었다. 1주일에 3건 정도 노레보정을 처방하고 있는서울 영등포의 P산부인과 역시 ‘환자’ 비율이 기혼여성과 미혼여성 반반 정도다.

노레보정이 시판 1개월을 넘기면서‘약인가, 독인가’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처방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넘어서고 있지는 않지만, 당초 우려했던 성문란 풍조 조장은 물론 청소년 성도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노레보정 수입사인 현대약품측은 수입실적이나 판매실적에 대해 외부유출을 꺼리고 있어 정확한 판매내역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의약업계에 따르면 노레보정은 시판과 동시에 1차로 전국 약국에5만여갑(10만정)이 뿌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 이 약들이 다 소진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져 처방이 폭발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젊은층이 많이 몰리는 대학로에서J약국을 경영하는 정모약사는 “노레보정 판매 전후로 상당히 많은 젊은이들이 약을 구입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으나 의사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보니 실제 처방전을 들고 오는 젊은 층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노레보정이 사전피임약처럼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될 경우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점ㆍ부작용

문제는 의사 처방을 거치지 않는음성적인 거래. 벌써부터 일부 약품 도매상 등에서 의사처방을 거치지 않은 채 비밀리에 노레보정을 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오ㆍ남용이 우려되고 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 P씨는 “일반 산부인과 의원에서 처방되는 노레보정은 미미한 수준으로 보인다”며 “노레보정이 음성적으로 유출되는 사례가 주변에서 들린다”고 말했다. 남성사이에 관심의 대상이됐던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가 음성 거래되고 있는 것에 비춰 알음알음으로 응급피임약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

대한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이와관련, 전국의 산부인과 병ㆍ의원을 대상으로 노레보정 사용에 따른 실태조사를 준비중이다.

노레보정은 성문란 풍조 조장 논란뿐 아니라 오ㆍ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커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호르몬 제제인 이 약의 특성상 생리주기의 변화를 가져오고 불규칙한출혈이 대부분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소화기 장애나 알레르기 현상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보고되지 않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해외에서는 이 약을 복용한 후 피가 응고되는 혈전증 증가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노원을지병원 산부인과 박원일 박사는 “중년여성은 물론 담배를 많이 피는 젊은 여성도 이 약을 과다 복용할경우 혈전증 증세를 유발해 생명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약을 처방받기 위해 산부인과를찾는 대다수 여성들이 이 약의 효능을 100% 맹신하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인천 K의원 김모씨는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을 설명해도 피치 못해서 하는 일이니 괜찮다는 식”이라며 “약의 효능을 과신하고 부작용을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성관계 72시간내 복용

노레보정은 프랑스 HRA파마사가 개발한 사후(응급)피임약으로 현대약품이 지난해 5월 국내 시판 허가를 신청, 올 1월21일부터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 일반피임약의 최소 8배이상의 고농축 호르몬제제인 노레보정은 수정란의 착상을 막는 방식으로 성관계 후 임신을 막는 효능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사후피임약(AfterPill)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노레보정은 성관계후 72시간내 12시간 간격으로 2알을 복용하면 임신방지 효과를 볼 수 있다. 성공률은 80~90%선.

현대약품이 공식적으로 제품에 표기한 부작용은 월경외 출혈과 구토등이며 자궁외 임신우려가 있는 경우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피가 응고되는 혈전증 증가등 치명적인 부작용도 경고하고 있다.

노레보정은 청소년 등의 원치않는 임신이나 강간에 따른 낙태방지목적으로 40여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시판 당시 수정란 착상을 막는 방식과 관련, 낙태와 마찬가지라는 등의 생명윤리논란과 함께 종교계와 여성단체간에 치열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또 의사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할 것이냐 일반의약품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힘겨루기도 벌어졌지만 결국 전문의약품으로 결론이 났다.

/최기수기자

■국내 5~6곳 신청.일반의약품 전환추진도

노레보정의 ‘카피(Copyㆍ복제) 제품’들이 무더기로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제약회사들을 중심으로 ‘사후(응급)피임약’을 전문의약품에서 의사처방이 필요없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지난달 말까지 노레보정과 같은 효능을 가진 응급피임약을 제조 또는 수입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한 제약사는 5∼6곳. 삼일제약을 비롯해 크라운제약, 일양약품과 구주제약 등이 응급피임약 제조허가신청을 한데 이어 삼성제약은 태국에서 응급피임약을 수입, 판매하겠다는 수입허가신청을 냈다.

특히 삼일제약은 이미 노레보정과 약효가 같다는 것을 입증하는 약효 동등성 시험평가를 전제로 응급피임약제조허가를 받아 올 하반기에는 제품을 직접 제조ㆍ판매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응급피임약 제조 과열현상은 노레보정의 주성분인 레보노르게스트렐에 대한 국내외 특허기간이 이미 끝나 제조기술과 시설만 갖추면 똑같은 응급피임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문의약품으로 고시됐다 하더라도 판매일로부터 1년이 지나면 조정신청을 할 수 있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약업계의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한 여성포털사이트의 설문조사결과, 여성 70% 이상이 이 약을 사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혀주목된다. 이와 관련, 제약사들은 잠재수요는 엄청난 데도 의사처방 때문에 상당히 억제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의약품으로 풀릴 경우 청소년 등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 부작용 등을 놓고 관련 단체ㆍ기관 간에 일대 격돌도 예상되고 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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