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
프랑스 작가 미셸 깽(53)이 2000년 발표한 소설 ‘처절한 정원’(문학세계사 발행)은 60쪽 정도의 짧은 분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거기 담긴 메시지는 과연 처절하다.
작가는 1999년 10월 모리스 파퐁의 재판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하면서 과거의 문을 연다.
파퐁은 1942~4년 1,590명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고도 전후 자신이 레지스탕스였다는 경력을 내세우며 파리 경찰국장을 역임하는 등 권세를 누리다가 1981년 전력이 폭로돼 1997년 재판에 회부, 1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복역 중인 인물.
파퐁의 재판을 계기로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한 프랑스 가족의 기억은 묻혀진 진실을 드러내는 일, 그 진실의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레지스탕스였던 아버지와 삼촌이 기차역의 변압기를 폭발시킨 뒤 독일군에 체포된다.
갇힌 두 사람은 어릿광대 출신 독일 보초병의 익살에 위안받으면서 시간을 견딘다. 그런데 실제 범인인 아버지와 삼촌 대신 범인을 자처한 한 남자 덕분에 두 사람은 풀려난다..
그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 남자의 부인, 아버지와 삼촌의 관계는 무엇일까. 소설의 줄거리는 작가가 이 의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평생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 노릇을 하면서 삶 전체를 바쳐 진실을 짊어지고 간 아버지, 그 발걸음은 힘겹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은 실제 어릿광대의 옷을 입고 아버지의 세대를 대신해 파퐁의 재판에 참석한다. 가슴 저린 소설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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