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또는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 산과 사막, 그리고 초원으로 이뤄진 그 험한 곳에서 동양과 서양이 만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권영필(權寧弼ㆍ61)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가 최근낸 ‘렌투스양식의 미술’(사계절)은 현장을 십여회나 답사, 미술품을 통해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문명을 소개한 역저이다.
미술사학의 권위자로 현재 중앙아시아학회장을 맡고 있는 권교수는 이 책으로 국내 유목문명에 대한 연구의 차원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_ ‘렌투스 양식의 미술’은 어떤 책입니까.
“기원전 7~8세기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스키타이, 흉노 등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에게도 높은 수준의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몽골 노인울라의 흉노무덤에서는 사람 얼굴 모양의 모직제품이 나왔는데 매우 정교합니다.
일반적으로 유목문명은 열등하고, 정주(定住)문명은 우등하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_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럼요. 증거가 많아요. 전남 화순 등 전국에서 가지방울 유물이 많이 발견됐습니다. 청동기 유물인데 제사 집전자나 정치 지배자가 상징물처럼 지녔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몽골오르도스 등에서도 방울이 달려있는 흉노의 단검이 많이 발견됐습니다. 경북 영천서 발굴된 혁대, 중국 시안(西安)에서 나온 흉노의 혁대는 둘 다 호랑이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김해에서 발굴된 동복(銅鍑ㆍ항아리 모양의 끈 없는 조리도구)과 중국 산시(陝西)성에서 발굴된흉노의 동복도 모양이 흡사합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우리 문명의 원류를 이들 유목문명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_어떤 경로로 유입됐습니까.
“함경도와 태백산맥 동쪽 해안을 따라 유입됐다고 봅니다. 함경도는 초기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고구려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경주에 다다릅니다.
신라에는 금관등 금제품이 유난히 많은데 스키타이, 흉노도 금 공예품이 많았습니다. 고구려는 313년까지 한나라의 식민지였고, 백제도 지리적 특성상 유목문명의 유입이 어려웠습니다. 청동기시대부터 통일 이전의 신라 때까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_책에서 강조한 유목 미술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천천히’ 입니다. 광막한 자연환경 속에서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고 다른 문명과의 접촉이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술품의 양식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천천히’를 뜻하는 그리스어 ‘렌투스’로 제목을 정한것도 이 때문입니다.”
_중앙아시아를 여러 번 다녀오셨지요.
“1990년 유네스코주관의 실크로드 탐사에 서울대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와 함께 초빙돼 중국 신장(新疆)성에 처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중국과 국교가 열린 뒤로는 해마다 한두번 다녀왔습니다. 책에 실린 사진의 90%는 제가 찍은 겁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어요.
1998년 8월 신장성 호탄지구 불탑에 들어가 6시간 정도 조사하고 나온 뒤1시간 30분 정도 사막을 걸었습니다.
기온은 50도를 넘었고 마실 물도 떨어지고 그늘은 하나도 없어서 그대로 쓰러질 뻔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인간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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