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의 전형으로 서방에 비쳐졌던 걸프만 왕정 국가들에 민주주의를 향한 훈풍이 불고 있다.아직은 작고 초보적 수준이지만, 정치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지배층,피지배층 가릴 것 없이 확산되고 있다는 데서 과거에 비하면 파격적이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9ㆍ11 테러에 따른 아랍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혁ㆍ개방을 유도한 자극이자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에서는 여성의 참정권과 같은 개혁바람이 이미 상당부분 이뤄져 왔으며 9ㆍ11 테러 여파로그 속도가 더 빨라지는 추세다.
걸프만의 작은 섬나라 바레인은 지난달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는 ‘혁명적’ 헌정개혁을 단행했다. 2004년 예정됐던 총선, 지방선거도 올해로 앞당겼다.
바레인은 이 선거에서 걸프만 국가로는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과 피참정권을, 외국인 거주자들에게도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키로 해 이웃 국가를 놀라게했다. 바레인의 강력한 개혁정책에 고무받은 카타르도 이와 유사한 입법을 추진 중이고, 오만은 개방적 정치체제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3년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올해를 ‘정치개혁 원년’ 으로 천명하고 올 여름 총선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여론조사의 조작도 없앨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들국가가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면 쿠웨이트는 여성에 의한 아래로 부터의 개혁이 치열하다. 지난달 쿠웨이트 여성 운동가 30명은 비록 실패했지만, 여성의 참정권, 피참정권을 금지한 선거법을 무시하고 유권자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하려는 상징적인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 법원에서도 행정적ㆍ기술적 이유로 패소판결을 내렸지만 이 과정에서 법원이 수차례 청문회를 개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의회 내 개방론자들은 이들이 제기한 개혁안을 법안으로 만들어 상정했다.
걸프 국가는 아니지만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이슬람 민병대와 10년째 치열한 내전을 치르고 있는 알제리는 5월 30일 내전 발생 이후 사실상의 첫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모로코도 내년으로 총선 일정을 잡았다. 이들 국가는공정한 선거에 대한 의지를 알리기 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선거 감시단 책임자로 초청하겠다고 밝혔고, 카터 대통령도 이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아랍권의이 같은 바람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론도 적지 않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의식이 지배층에 확고하다고 볼 징후가 뚜렷하지 않고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개혁도 미국의 핍박에 마지못해 끌려가는 감이 없지 않다는 게 비판론의 주조이다.
요르단의 유명 사업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라비브 카므하위는“제도적 장치에서가 아니라 군주의 기분에 따라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게 흠” 이라고 시인했지만,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이 같은 자극을 오래 지속시키느냐가 관건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이들 국가 인권운동가들의 지적이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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