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이’(감독 류승완)는 두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수혜자는 따로 있다. 전주 KGB(신구)를 대신해 투견장을 관리하는 독불이 정재영(32)이다.여자 친구 수진(전도연)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성질 더러운 깡패에서 후반부로 가면 연쇄 살인마가 되어 눈은 초점을 잃고 광기에 휩싸인다.
경선(이혜영) 수진과 혈투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그렇게 싫으냐”며 자조와 슬픔이 섞인 눈빛으로 수진을 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번 연기로 그는 드디어 괜찮은 조연에서 주연감으로 평가절상됐다. 서울예대 연극과 재학시절부터 몇 편의 연극에 출연한 뒤, 영화에 데뷔한 것은 딱 2장면이 나오는 1996년 ‘박봉곤 가출사건’. 이후 연극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장진과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연극 ‘허탕’ ‘박수칠 때 떠나라’ 와 영화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등. 그러나 정작 그에게 스타의 가능성을 부여한 것은 류승완 감독이다.
“독불을 악한으로만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그런 비굴하고 야비한 면모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독불은 그야말로 사람을 ‘개 패듯’ 때린 뒤, 길바닥에 떨어진 선글라스를 집어주는 친절함을 보인다. 그게 바로 ‘독불’식 사랑이다.
“물론 영화에서 치고 때리는 것이 다 진짜는 아니지만, 10번쯤 휘두르면 한 두 대는 정말 맞게 되어 있다. 맞는 게 마음 편하지 여자를 때린다는 게 쉽지 않다. 전도연을 때리는 장면을 마치고 나면 손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었다. 젓가락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몇 번NG 끝에 전도연 허벅지에 젓가락이 꽂힌 후에야 O.K 사인이 났다."
고교 때는 PD 지망생이었으나 대학 때부터 연기로 방향을 돌렸다. “연출가는 연기자보다 무엇이든 한 수위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우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기능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는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을까.
“내가 (원)빈이 보다 잘 생겼다고 생각하면 바보다. 이미지나 기본 외모에서는 한 수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 쪽을 닮아 가기보다는 나만의 강점을 살리고 싶다.”
처음에는 무색무취하지만 점점 향이 짙어지는 배우. ‘피도 눈물도 없는’ 처참한 종말을 맞는 독불로 그는 그 가능성에 한발 더 다가섰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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