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살 차이지만 열 아홉은 아이, 스물은 어른 대접을 받는다. 열 아홉이 주는 뉘앙스가 좋은 것도 그 때문이다.하지만 정작 열 아홉 살짜리는 마냥 좋지 만은 않다.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신경조차 써주지 않는다면 막막하다. 어른이 되려면, 죽어 지내든 뛰쳐 나가든 둘 중 하나다.
3일 방송된 ‘HD TV 문학관-19세’ (KBS2)는 후자의 경우를 그렸다.
1970년대 강릉. 정수(고동현)는 우등생 형 때문에 부모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꿈은 대관령 너머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과 친구 누나인 승희의 관심을 사는 것.
어느날 올라가 본 대관령에는 너른 배추밭이 있었다. 그 날부터 그의 꿈은 그 배추밭의 주인이 되는 것.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과 교복까지 불살라 버리고 무작정 밭 일에 뛰어든다.
어깨에 피멍이 들어가며 물지게를 나른 끝에 첫 배추 농사를 성공시킨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이너무 빨리 어른이 되려 했음을 깨닫는다.
이순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는 ‘HD TV 문학관’이라는 새로운 문패에 걸맞게 머리 속에만 존재할 수 밖에 없던 소설 속 강릉 일대를 실재의 공간으로 재현시켰다.
눈으로 읽으면 두드러지지 않는 강원도 사투리가 생생하다. 특히 중학생 정수로 나온 안재홍의 사투리는 인상적이다. 영상화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셈.
하지만 HD TV를 의식해 배경에 들인 정성에 비하면, 정작 알맹이는 허술하다. 특히 농사일에 매달리던 정수가 술집에서 ‘첫 성 경험’을 한 후 갑자기 배추밭을 불 지르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후반부에 이르면 초반의 흡인력과 설득력이 빛을 잃는다.
그 나이 때의 설익은 고집과 방황으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듯하던 주인공이 “(어른이 되려면) 딱지를 떼야지”하는 극중 술집 작부의 말처럼, 섹스를 통해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셈이다.
소설에서는 독자의 상상력으로 가능한 ‘뛰어넘기’가 드라마에도 똑 같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홀히 결과다.
웃음을 자아내는 성장기 에피소드 중심의 초반보다 알을 깨고 나와,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깨달음을 얻는 후반부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놔둬라, 저도 어른이 되느라고 고생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보다 묵직하게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