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교통사고로 목과 허리를 크게 다쳐 수술을 받으려 했던 한모(39ㆍ여ㆍ경북 구미)씨는 요즘도 분을 삭이지 못한다.가해자가 가입한 S보험사가 “부상의 70% 정도는 사고가 원인이 아니다”라며 치료비를 대폭 깎으려 했기때문이다.
보험사가 내민 근거는 한씨의 동의도 없이 제시한 교통사고 이전 진료기록과 서울의 종합병원 자문의가 이를 토대로 작성한 감정소견서.
한씨는“자문의가 사고상황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몸 상태가 원래 엉망이었다는 식으로 소견서를 써 놓았다”며 “이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못 받은데다 보험사로부터 보험사기꾼 취급까지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심모(29ㆍ인천)씨도 지난해 9월 교통사고로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으나수술비 지급을 거절당했다.
D보험사측이 동의없이 진료기록을 빼낸 뒤 자문의로부터 사고와는 무관한 기왕증(기존 질환)이 50%라는 감정소견서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보험사 자문의를 맡은 일부 대형병원 정형ㆍ신경외과 의사들이 환자 상태를 직접 진찰하지도 않은 채 보험사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감정소견서를 남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는 감정소견서를 근거로 치료비를 깎는 등 횡포를 부려 피해자들의 상처가 더 깊게 패이고 있다.
■ 유착 실태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통상 보험사는 대형병원 정형ㆍ신경외과 의사들에게 건당 15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사고 피해자의 장애율 감정을 의뢰한다.
자문의 역할은 보험사가 보낸 피해자의 진료기록과 MRI필름 사본 등만본 뒤 부상과 사고와의 관련 정도를 감정하는 것.
문제는 일부 자문의가 직접 진찰없이 기존 질환을 통상보다 높은50~70%씩(사고 후 몸 상태의 원인 비준)이나 인정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보험사는 유리한 감정소견을 내놓는 자문의에게 감정을 몰아주고,자문의는 감정료를 챙기기 위해 보험사 입맛에 맞는 소견서을 남발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 의료법 위반 소지
현행 의료법은 환자의 동의없이는 진료기록의 유출을 금지하고, 의사가환자에 대한 직접 진찰 없이는 어떠한 진단서나 증명서 등을 발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 원무과에서 몰래 넘겨받은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감정소견서를 작성해준 자문의도 의료법 위반소지가 크다.
이에 대해 보험사측은 “대부분 진료기록 열람 동의를 받는데다 부상정도에 대한 적정한 평가를 받으려는 선의의 목적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험사측은 진료기록 열람 등에 대한 동의를 받으면서 ‘환자 의지와 상관없이 자문의사의 감정을 받아낼 수 있다’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일부는 아예 동의 절차를 생략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서초동의 모 변호사는 “몇 년 전 의료법으로 고소당한 자문의가기소유예(가장 낮은 형사처벌)된 전례가 있다”며 “일부 자문의는 상습성이 있는 만큼 정식기소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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