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은 기분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은 기분파

입력
2002.03.04 00:00
0 0

어느 날 무역업을 하는 친구가 한국인 손님을 상대하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자랑했다.“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국 손님들은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망설이면 술을 마신 뒤 “형님! 형님!”하며 기분을 띄워주면 십중팔구 계약서를 승인한다는 이야기였다.

한국 말에서 가장 배우기가 어려웠던 게 사람의 감정과 감각을 묘사하는 단어였다.

‘안타깝다, 조마조마하다, 들뜨다, 뒤숭숭하다, 꿀꿀하다, 찝찝하다, 갑갑하다’ 등등.

한국 사람들은 이처럼 세밀한 느낌까지 구분해 말로 표현하지만 중국어에는 여기에 대응하는 단어들이 별로 없다.

한국어교사들도 중국말로는 표현하기 힘든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을 자주 접하기 전까지는 이 단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에 논리를 표현하는 단어는 대개 한자어다. ‘이론(理論), 개념(槪念), 구조(構造), 추리(推理), 검증(檢證), 연구(硏究),체계(體系), 본질(本質)’ 등등.

언어는 민족의 감정과 사상의 표현이며 언어가 사람들의 생각을 제약하기도 한다.

두 사례를 통해 한국 민족이 중국 사람보다 더 감성적이지만 사변적이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감정에 민감하며 정이 많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상대방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대신 상처 받기가 쉽다.

거기에다 이성으로 감정을 억제하는 습관이 돼 있지 않아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얼굴에 쉽게 나타난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인들을 보고 무뚝뚝하고 도도하다고 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다혈질에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민족으로 보인다.

중국을 갔다 온 어느 한국 교수님은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의 컴퓨터 광고에는 부품에 대한 소개가 빠져 있지만 중국에선 컴퓨터에 들어있는 부품을 보고 컴퓨터를 산다”고.

또 “중국의 광고에는 ‘무슨 상을 탔다’, ‘무슨 좋은 성분이 들어갔다’ 는 내용이 많은 데에 비해 한국에는 이미지만을 선전하는 광고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느낌에 더 많은 자극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내가 집을 옮기면서 “보증금을 돌려 받았으니 영수증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주인에게 물었다.

“학생이 착하다는 것을 우리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안 써도 상관없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인에게는 감정이 법보다 더 믿음직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합리성 대신에 감정대로 행동하는 경우는 대인관계와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와 공정한 직선제를 위해 그렇게 많은 투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정치인에 이끌려 자기의 표를 내놓았다.

중국에서는 한국 사람과 중국 산동성 사람의 성격을 비슷하게 평가한다. 산동성 사람을 향해 “山東棒子”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에게도“高麗棒子”라고 한다.

“棒子”는 막대기란 뜻인데 속이 깊은 것보다 ‘솔직하다, 쉽게 흥분한다, 두려움이 없다’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산동성 토박이인 내가 한국 사람들은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왕 샤오링·중국인·경희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