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동안 영세중립국을 고수해온 스위스는 3일 유엔가입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유엔가입안이 통과될 경우 스위스는 유엔의 190번째 회원국이 된다. 현재 세계에서 유엔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나 로마 교황청뿐이다.스위스의 유엔 가입 국민투표는 이를 지지하는 정부와 재계,반대하는 야당간의 치열한 막판 선거전 속에 진행됐다.≫스위스 정부는 “스위스와 유엔은 평화와안전, 인권, 환경보호, 경제 안정, 가난과 빈곤에 대한 싸움 등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스위스의 정당대부분과 의회, 재계, 노동조합 등은 유엔 가입을 지지했다.
이들은 세계보건기구(WHO) 등 유엔기관에 내는 기여금만도 한해 5억 스위스프랑(2억 9,400만 달러)에 이르므로 유엔에 가입, 이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유엔 가입으로 한해 4,200만 달러의 경비가 소요되지만 제네바 등에 있는 유엔 기관에서 나오는 수입 규모가 18억 달러에 달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원내 제2당인 극우 스위스 국민당을 이끌고 있는 억만장자 크리스토프 블로허 등 반대 진영은 유엔 가입이 스위스의 주권을 침해하고 결국에는 200년 동안 전쟁을 피하게 한 중립성을 손상시킬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영세중립국이지만 이미 유엔에 가입해있는 핀란드와 오스트리아 외교관들은 유엔 가입과 중립국 지위 유지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투표가 26개 주(칸톤)별 개표결과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은 스위스 헌법이 유엔 가입과 같은 주요 사안에 대해 국민투표와 동시에 전체 칸톤의 과반수 지지를 획득하도록 한 이중의 여과장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구가 소수인 농촌지역의 소규모 칸톤의 발언권이 인구가 많은 도시지역 칸톤에 의해 무시당하지 않도록 배려한 제도이다. 그러나 칸톤의 찬반 득표를 계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칸톤 중에는 표결권이 절반만 인정되는 ‘하프 칸톤’(Half-Canton)이 6개나 돼 표 계산이 복잡하다.
유엔 가입을 묻는 국민투표는 이미1986년 실시된 적이 있었는데 동ㆍ서 양 진영의 대립 와중에 중립성이 침해될 것을 우려한 유권자 75%의 반대로 부결됐다. 스위스 정부는 이를 의식, 냉전 종식으로 거의 모든 국가가 유엔 회원국이 되는 등 국제 상황이 바뀌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스위스 정부는 투표에 앞서 ‘중립성 침해’논리를 불식시키기 위해 유엔에 가입해도 중립국의 지위는 유지된다는 내용을 명기한 유엔 가입신청서를 미리 공개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앞으로 보내는 이 서한은 “스위스는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중립국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스위스 중립국 연혁
1815년 영세중립국 지정(빈 협약)
1920년 국제연맹 가입(1938년 탈퇴)
1986년 유엔가입 여부 최초 국민투표 부결
1996년 나토 '평화파트너십'협정 가입
2000년 EU 포괄통상협정 가입
2002년 유엔가입 여부 2차 국민투표
스위스는 현재 로마교황청을 제외할 때,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에 가입하지 않은 '실질적인국가'이다.1815년 빈 협약으로'영세중립국'지위를 얻은 이래 전쟁불개입,비군사동맹 등 중립 원칙을 지켜왔다.여기에는 1499년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은 이후 수차례 세력확장 시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등 주면 강대국의 견제로 번번히 좌절했던 역사적 경험도 작용했다.
영세중립국은 전쟁에 참가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전쟁의 원인이 될수 있는 동맹조약,안전보장조약 체결이나 자국 내의 외국군의 주군 등을 불허한다.하지만 '집단적 안전보장기구인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영세중립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전통적 견해가 최근 '반드시 모든 가맹국이 군사행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해석으로 약화된 데다 탈냉전 후 국제사회 역할 필요성 등이 스위스내 여론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스위스는 1차대전 후 한때 국제연맹(유엔의 전신)에 가입한 적도 있으나 이 역시 '군사제재 불참'선언에 이어 탈퇴했고 이우 휴엔과 유럽연합(EU)등 가입을 거부해 왔다.하지만 이미 세계무역기구(WTO),유럽안보협력기구(OSCE)등 기구와 세계보건기구(WHO),국제노동기구(ILO)등 유엔 전문기구의 회원국으로 활동 중인데다 탈냉전 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EU등 지역기구와 각종 협정을 맺는 등 국가이익을 염두에 둔 행보를 계혹해 왔다.지난해 11월엔 나토와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해 '탈중립화'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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