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바라다 보이는 일본 쓰시마(對馬)섬과 규슈(九州) 사이에는 이키(壹岐)라는 지명의 작은 섬이 있다.이 섬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BC 4~AD 3세기 야요이(彌生)시대 유물, 유적이 대규모로 출토된 하루노쓰지(原노辻) 유적이 발굴됐다. 이 유적은 그 중요성이 인정돼 2000년 11월 일본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된 바 있다.
18일 오전 10시 하루노쓰지 유적 조사사무소 회의실에서 주목할 만한 회의가 열렸다. 유적 조사사무소가 그 동안의 발굴 성과를 보고하는 ‘2001년 조사지도위원회’이다.
발굴 주체인 사무소측의 보고를 받기 위해 나라(奈良)와 도쿄(東京) 등 일본 각지에서 전문가들이 모여들었다.
사무소측은 “1996년 이 유적에 대한 본격 발굴조사 이후 대규모의 환호(環濠)부락과 무문토기, 낙랑계 토기, 삼한시대 와질(瓦質)토기,옹관, 인골(人骨) 등 한반도에서 전래된 유물이 대량 발굴됐다”고 보고했다.
사무소측은 또 “한국과 중국 등 대륙의 선진 기술로 만들어진 일본 최고(最古)의 선착장이 발굴된 것 등으로보아 이키 섬은 한반도 등 대륙에서 일본열도를 경유하는 근거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사무소측은 그 동안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실에서 공개했는데 전문가들이 “완벽하게 한국에서 만들어 왔다”고 단언할 수 있는 흑도 계통의 무문토기와 점토대 토기들을 볼 수 있었다. 또 붉은 흙에 석면 같은 것을 섞은 것이 특징인 낙랑계 토기도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6개월 전 발굴해 이날 처음 전문가들에게 공개한 옹관이었다. 항아리의 주둥이 부분에 무늬가 새겨져 있고, 몸체에 선형의 빗금이 남아있는 BC2~1세기 ‘김해식 옹관’이다.
사무소측은 또 최근에 발굴된 20~30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인골을 신장(169㎝)과 전체적인 골격의 특징을 고려할 때 한반도 이북에서 온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같은 발굴조사 보고에 대해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ㆍ규슈대 고고학과 대학원교수) 조사지도위원장은 “이 곳에서 시대적으로 한국의 청동기시대, 삼한시대의 토기 등이 많이 출토된 것이 사실”이라며 “일상 용품인 토기의 대규모 출토는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이주민)이 정착해 살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확인했다.
회의에 참관했던 임효재 한국선사고고학회장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최대 규모의 집성촌임이 분명하다”며“한일 고대 교류사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획기적인 유적”이라고 말했다.
일본 학계는 야요이 문화의 유물과 유적이 한반도 남부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이미 인정하고 있지만, 이것을 증명해주는 대규모 유적을 발굴해 정식으로 보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회의는 의미가 있었다.
하루노쓰지 유적의 전체 면적은 100헥타르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이다. 그러나 그 동안 시행된 조사 면적은 전체의 6%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날 회의에 참가한 학자들은 앞으로의 발굴 성과와 그 가능성에 대해 커다란 기대감을 표시했다.
다카노 후지(高野普司) 하라노쓰지 유적조사사무소 소장은 “발굴조사는 앞으로 30년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며, 이곳을 야요이 시대의 종합유적지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키=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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