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 일식이 있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편지 한 장이 날아든다.삶을 포기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하는 땅, 아프가니스탄. 정치, 종교적 신념의 차이 때문에 30년 가까이 이어진 내전은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어버린 몸에는 그러한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당장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삶이기에 민중은 역사적 아픔과 정치적 억압을 잠시 잊는다. 생존에 대한 강한 집착만이 있을뿐이다.
‘가베’로 국내에 이미 소개된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칸다하르’(Kandahar)에서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정서를 읽어낸다.
아프간 출신의 캐나다 저널리스트 나파스(닐로우파파지라)가 고향 칸다하르로 돌아가려 한다. 아프간에 홀로 남겨둔 여동생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다. 개기일식까지는 겨우 사흘이 남았는데 여정이 만만치 않다.
여기서 여성은 이름도 이미지도 없고, 그저 “저기 저 검은 머리”로 뭉뚱그려 불리는 존재에 불과하다.
나파스는 이란서 칸다하르로 가는 가족의 네 번 째 부인으로 위장하고, 시체에서 빼낸 반지를 1달러에 강매하는 악다구니가 동심을 대체해버린 소년 칵의 길안내를 받는다.
생계에 대한 집착으로 푼돈에 눈독을 들이는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길은 번번이 어긋난다.
미국계 흑인 의사 사히브의 도움으로 적십자 막사에서 만난 남자와 함께 결혼식 무리에 끼어들지만 어느새 태양과 달이 하나가 되고 있다.
‘칸다하르’는 주인공의 실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파지라 역시 16살 때 아프간을 탈출했고, 고향 카불에 있는 친구 다이아나로부터 자살하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서 1998년 아프간으로의 회귀를 시도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서는 데 실패하자, 아프간 난민의 현실을 담은 ‘사이클리스트’의 감독 마흐말바프를 찾아간다.
때문에 나파스의 여정과 내레이션을 따라가는 ‘칸다하르’는 다큐멘터리적 인상을 풍긴다.
아프간으로 가는 여정에서 거치는 사막등은 영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다. 2001년 칸영화제 에큐매니컬상, 페데리코 펠리니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고, 작품 외적인 화제도 시의 적절하게 터져나왔다.
미국서 개봉된 후 지난해 12월 미국 언론은 사히브 역의 배우 하산 탄타이가 80년 주미 이란대사관 대변인 알리 아크바르 타바타바이를 암살한 데이비드 벨필드였다고 보도했다. 1일 개봉.
문향란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