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이후에도 대립의 각을 세워 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의 관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파이낸셜 타임스는 24일 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에 대해 투표권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는 협력 방안에 합의했으며, 이를 러시아측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측이 이 방안을 수용하면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49년 구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창설된 나토는 반세기 만에 군사기구에서 과거 동구와 서방을 아우르는 정치ㆍ안보 협력기구로 탈바꿈하게 된다.
나토의 방안은 19개 회원국과 러시아가 참여해 온 상설공동협의회(PJC)를 자문회의에서 정책결정회의로 격상하고, 러시아에게 ‘거부권 일부 제한’을 제외하고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7년 창설된 PJC는 양측의 적대 관계 청산에는 기여했으나 나토 회원국의 의견을 취합, 정리한 뒤 러시아와의 ‘자문’ 을 따로 구하는 형식인 ‘19+1’ 체제라는 한계를 지닌데다 러시아는 투표권 등이 제한돼 왔다.
나토 회원국들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참여하는 ‘공동안보회의’를 제안한 이후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 범위 등을 놓고 논란을 벌인 끝에 이번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나토는 러시아가 회원국과 거의 같은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만큼 5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나토-러시아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 방안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러시아는 그러나 블레어 총리의 제안 이후 회원국과 완전히 동일한 자격을 의미하는‘20’ 체제를 주장, 확정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러시아는 나토의 방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러시아는 군사 행동 결정권을 포함한 회원국의 중대한 이익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규정에 대해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며 특히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나토가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방어를 취한다”는 공동방위조항(제5항)에서 러시아를 제외한 것은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밖에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인 평화유지활동, 대량살상무기(WMD)에 관한 상호 정보 교환등도 미국의 이익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있다.
러시아 군부도 미국의 탄도탄미사일협정(ABM) 일방 탈퇴와 나토의 동진 정책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온건 대응’을 비판하며 ‘완전한 거부권’ 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취임 이후 줄곧 실용주의 노선을 걸어 온 푸틴 대통령이 나토의 방안을 무조건 물리칠 수는 없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러시아는 ABM 협정과 테러와의 전쟁 지원에 대한 대가로 조건 없는 거부권 행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푸틴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5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은 ‘타협점’ 찾기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수 기자
jslee@hk.co.kr
■바르샤바 조약國 속속 합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는 후보국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이었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포함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등 10개 국.
이들은 지난해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10개국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토가 유럽에 안보와 안정을 가져왔고 나토의 확장은 향후 운명에 적합하다”며 강력한 가입 의지를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 회담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동구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고 확장대상에 금지선은 없다”며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이에 따라 먼저 에스토니아 등 5개국은 11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때 회원국 가입이 확실시된다.
또한 지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테러전쟁 때 공군기지를 제공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도 터키와 프랑스의 지지를 받고 있어 2004년께는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는 99년 처음으로 나토에 합류한 바 있다.
최진환 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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