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과학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계가 등장했다.하나는 1,000조 분의 1초까지잴 수 있고, ‘시간 진화의 신비’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최첨단 광원자 시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1,000년에 한번 종을 치며 인류의 근시안적인 시간개념을 바꿔 줄 밀레니엄 시계다.
광원자시계가 또 하나의 과학적 도전이라면, 밀레니엄 시계는 이러한 도전들이 궁극적으로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워 주는 도구다. 현재에 도전하고 ‘내일을 위해 사과나무를 심는’ 과학의 미덕이 두 시계에 집약된 셈이다.
■광원자 시계
‘똑딱’하는 1초를 1,000조 분의 1까지 나눌 수 있는 광원자시계의 등장은 완전히 새로운 시간의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가 광원자시계(Optical Atomic Clock) 개발에 성공한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이 시계를 2002년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할 과학의 6개 분야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광원자시계는 이전에 등장한 마이크로파 원자시계(Microwave Atomic Clock)보다 정확도는 1,000배, 안정성은 20배 이상 뛰어나다.
시계는 일반적으로 진자로 대표되는 진동추와 왔다갔다하는 진동추의 움직임을 세서 ‘시간’으로 표시해 주는 시계침으로 나뉘어진다. 원자시계는 원자에서 내보내는 파장이나 공명을 진동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마이크로파 원자시계의 경우 세슘 원자의 규칙적인 공명(resonance)이 진동기준이 된다.
원자에서 발산되는 마이크로파의 정확한 주기가 초고속 전자계산시스템을 통해 시간으로 변환, 표시되는 것이다.
NIST가개발한 광원자 시계는 진동기준으로 마이크로파 대신 광파(light wave)를 이용한다. 여기에는 수은이온(전자 하나를 잃은 수은 원자)이 쓰인다.
수은이온이 빛의 특정 파장과 일정하게 반응을 하면 그 반응주기를 레이저 계산기가 시간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레이저 계산기.마이크로파 원자시계에 적용되는 전자계산시스템으로는 광원자 시계의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광원자 시계를 개발한 NIST의 업적 중 가장 높이 평가 받는 것도 이 레이저 계산기의 개발이다.
물론광원자 시계에 수은이온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는 이테르븀 등 다양한 원자를 이용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20년 후면 이중 가장 경쟁력 있는 광원자 시계 시스템이 확립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과학자들이 광원자 시계의 개발에 흥분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많이 쪼갰기 때문이 아니다. 이 시계가 ‘우주의 표준시간’으로서 시간의 진화를 밝힐 기준이 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광원자 시계는 원자가 가진 에너지 수준이 일정하다는 데 기초를 둔 것이지만 우주가 팽창하는 동안 그 에너지가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완전히 정확하고 외부 환경에 간여 받지 않는 안정적인 광전자 시계가 완성된다면 시간이 진화에 대한 연구도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광전자시계 속에 들어 있는 특정 원자의 에너지 수준을 변하지 않게 고정할 수 있다면, 우주의 팽창 속에서 방치된 채 변화하는 일반 원자 에너지와 비교해 그 차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시계
하루에 한번 시계바늘을 움직이고 1년에 한번 똑딱거리며 1,000년에 한 번 종을 치는 시계.
1만년 간 작동하도록 기획돼 1999년 개발에 들어갈 때부터 이목을 집중시킨 ‘밀레니엄 시계(MillennialClock)’가 곧 미 네바다 주 산맥에건립될 예정이다.
런던과학박물관에 이미 개발 완료한 시제품이 보관돼 있으며 현재 미 캘리포니아주 산라파엘에서 보다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최종품을 개발 중이다.
슈퍼컴퓨터의 창안자 대니 힐리스(DannyHillis)를 비롯, 여러 공학자들이 참여한 밀레니엄 시계 프로젝트는 과학자들이 늘 지구 종말과 맞닿을 수 있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인류도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에 토대를 둔 일종의 ‘상징물’이다.
이 프로젝트를 1999년부터 주도해온 곳은 미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롱나우 재단(Long Now Foundation).
‘기나긴 현재(Long Now)’ 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장기적 책임감 조성을 위해 96년 설립된 이 재단은 힐리스를 비롯해 작가 스튜어트 브랜드, 미래학자 폴 사포, 음악가 브라이언 에노 등이 참여하고 있다.
데이터를 잘게 쪼개서 동시에 연산하는 컴퓨터인 ‘대량 병렬 컴퓨터(massively parallel computer)’의 개발은 물론, 고성능 컴퓨터시장의 개척자로 알려진 힐리스는 밀레니엄 시계를 통해 현재의 시간관념을 뒤집고자 했다.
힐리스는 1386년 영국 옥스퍼드대의 ‘뉴 칼리지’ 건물의 천장을 만든 14세기 건축가가 수 백년후 이 천장의 떡갈나무 대들보를 교체할 재목을 준비하기 위해 다른 떡갈나무들을 심었다는 말을 듣고 ‘밀레니엄 시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95년 잡지 와이어드(Wired)에 발표한 ‘시계 성명서(ClockManifesto)’에서 밀레니엄 시계 프로젝트의 구상을 최초로 피력했다.
시계의 외형은 청동빛을 발하는 골동품처럼 우아하지만, 마찰에 의한 마모를 줄이고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과학적 방식이 총동원됐다.
달의 위치,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현지 시간, 춘ㆍ추분점,하지와 동지, 현행 태양력 등에 대한 1만년 동안의 움직임도 입력돼 있다.
또 온도 변화가 있어도 팽창ㆍ수축하지 않는 니켈과 동의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약 11㎏짜리 텅스텐 볼 3개가 시계의 추 역할을 한다.
시계에 3차원 컴퓨터연산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부착해 2만 6,000년마다 회전하는 지축이 춘분점에 미칠 영향도 계산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시계의 핵심은 전 자동이 아니라 사람이 때때로 태엽을 감아줘야 한다는 점이다.
롱 나우 재단의 알렉산더 로스 밀레니엄 시계팀장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이 시계를 멈추게 하는 것은 공학적 기술이 아니라 태엽감기를 소홀히하는 나태한 인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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