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53)씨는 요즘 나빠진 시력 때문에 실수가 부쩍 잦아졌다.소금과 설탕을 구별하지 못해 음식 간을 잘못 맞추기도 하고, 시계를 잘못 봐 꼭두새벽부터 온 가족을 깨우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이처럼 시야가 흐려지고 눈앞의 글씨나 물체가 잘 보이지 않는 백내장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매년 1,300만명 정도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는다. 전문의들은 “백내장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제든 수술만 하면 다시 시력을 회복할 수 있으므로 제때 적절한 치료를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눈은 그 구조와 기능에 있어서 카메라와 매우 흡사하다. 카메라의 렌즈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체의 상이 정확하게 필름에 맺히도록 해주는데 우리 눈의 수정체가 바로 이 렌즈의 기능을 한다.
백내장이란 투명한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져 보고자 하는 물체의 상이 수정체를 잘 통과하지 못하고 망막에 정확히 초점을 맺지 못해 시력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이다.
백내장 환자의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노화현상의 하나로 발생하는 노인성 백내장 환자다.
이런 노인성 백내장은 60대 노인의 60%, 70대 노인의 70%, 80대 이상에서는 90% 이상이 백내장에 걸리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노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환이다.
하지만 최근 햇빛 속 자외선이 많아지고 흡연 인구가 늘어나면서 30~40대의 발병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 노인성 백내장 발병 시기가 좀더 빨라진다.
당뇨병 환자는 일반인보다 백내장에 걸릴 확률이 5배 가량 높아 당뇨병환자의 15% 정도가 백내장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증상이 일단 나타나면 진행 속도도 일반인들에 비해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이처럼 당뇨환자의 백내장 발병률이 높은 것은 수정체 내의 과다한 당 성분으로 인해 수정체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노인성 백내장이 생기면 수정체가 두꺼워져 노안으로 돋보기를 끼던 사람도 일시적으로 돋보기 없이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아지는 ‘제2의 시력’ 현상이 나타난다.
가톨릭대 의대 강남성모병원 안과 주천기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회춘의 징조’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백내장 초기 증상이므로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곧바로 전문의에게 진단을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백내장의 가장 흔한 증상은 시력 저하다. 시력 저하 정도는 수정체가 흐려지는 위치나 정도, 범위에 따라 달라지는데, 수정체 주변만 혼탁해지면 시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동공이나 수정체 중심이 흐려지면 동공이 가려져 시력이 급격하게 저하된다.
또한 시력에는 이상이 없지만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이거나 멀리 있는 사물이 불분명하게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간혹 밝은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다가 오히려 좀 어두운 곳에 가면 잘 보이는 주맹(晝盲) 현상이나 맑은 날 야외에 나가면 눈이 심하게 부시거나 시린 증상이 생길 수도 있다.
이 밖에 백내장 초기에는 한 쪽 눈으로만 보아도 사물이 둘로 보이는 복시(複視)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연세대 의대 안과 김찬윤 교수는 “물체가 이중삼중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사시(斜視)와 비슷한데, 사시는 두 눈으로 보았을 때만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한 쪽 눈으로만 보아도 겹쳐 보이면 백내장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료법으로는 크게 약물요법과 수술이 있다. 약물의 경우 백내장 초기에는 진행 속도를 지연시켜 주지만 어느 정도진행된 다음에는 별 효과가 없다.
따라서 백내장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하는 게 좋다. 수술을 받으면 특별한 눈질환이 없는 한 일반적인 노인성 백내장은 대부분 정상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시력은 각막, 망막, 시신경 등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런 부분에 이상이 있다면 시력을 완전히 되찾기는 어렵다.
삼성서울병원 안과 기창원 교수는 특히 “백내장환자들이 수술을 하면 당장에 시력이 크게 호전된다고 믿고 있지만 당뇨병, 고혈압, 황반변성 등의 질환을 가진 사람은 수술을 하더라도 시력이 크게 호전되지 않을 수도 있고 수술 부작용으로 드물게 출혈, 염증, 감염 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백내장 수술 방법으로는 흐려진 수정체를 제거한 뒤 그 자리에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초음파 유화 흡인술’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 때 사용하는 인공 수정체의 수명은 반영구적이어서 수술이 일단 성공하면 다시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수술도 시행되고 있지만 안전성이나 효과면에서 초음파 유화 흡인술보다 뒤떨어져 그다지 많이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수술 뒤에 다시 혼탁이 생기는 후발성 백내장의 경우는 레이저 수술이 가장 효과적이다.
수술을 하는 시기로는 예전에는 교정시력이 0.1이나 0.2 이하였을 때가 적당하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요즘은 교정시력 0.7 이하가 되면 수술할 것을 권유하는 의사들이 많아졌다.
이는 교정시력이 0.7 이하로 내려갔을 때 수술을 할 경우 제대로 시력을 찾을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내장을 예방하는 확실한 방법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과도한 자외선과 음주, 흡연, 방사선 등을 피하는 게 최선이다.
당뇨병의 경우 지나치게 높은 혈당치가 지속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불규칙하게 혈당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해롭기 때문에 지속적인 혈당관리만이 백내장 발생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과다한 자외선도 백내장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야외 활동시에는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내장을 예방하는 습관
1. 스테로이드 성분의 안약을 장기간 사용하거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2. 햇볕에 나갈 때에는 색안경 착용을 습관화한다.
3.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통해 안과 질환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4. 지나친 흡연과 음주를 삼간다.
5. 눈에 좋은 미네랄(아연 구리 셀레늄 크롬) 비타민 칼륨 칼슘 등을 많이 섭취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백내장수술 권위자 김재호교수
백내장 수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재호(65ㆍ사진) 가톨릭대 의대 안과 교수는 “감이 너무 익으면 터질까 봐 손을 대기 어려운 것처럼 백내장 질환이 너무 진행되면 눈의 수정체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 수술하기가 어려워진다”며 “백내장 수술은 교정시력이 0.7이하로 떨어졌다면 빨리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1980년 국내 최초로 인공 수정체를 넣는 백내장수술을 한 이래 2만 건이 넘는 눈 수술을 했으며, 지금까지 423편의 관련 논문과 19권의 저서를 펴냈다.
정년을 불과 며칠 앞두고도 직접 백내장 수술을 하는 김교수는 “백내장은 50대 이상의 고령자에게만 나타났는데 요즘은 당뇨병 환자가 크게 늘면서 30~40대에서도 많이 발병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진성 당뇨병성 백내장이 오면 한 달 정도 만에 백내장이 급속히 진행되기 때문에 진료를 빨리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술 전 반드시 기도를 한다는 김교수는 “20여 년 전 국내에서 처음 수술을 시행했을 때만 해도 백내장 수술은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이제는 성공률이 100% 가까울 정도로 아주 쉬운 수술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안과 수술 기술은 일본 등지에서 배우러 올 정도로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수준인데 아직까지도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환자들이 적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94년 사재를 털어 가톨릭안과연구재단을 설립해 재단이사장으로 지금까지 안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으며, 남북의료협력 차원에서 지난해 북한 평양을 방문해 백내장 실명자 8명에게 광명을 찾아 주기도 했다.
1956년 가톨릭대 의대를 입학이래 47년 동안 가톨릭대 의대에서 한길을 걸어 온 그는 이 달 28일 정년퇴임한뒤 3월부터 서울백병원 21C안과병원 원장으로 제2의 의료인생을 시작한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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