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 이후 긴장이 고조됐던 한반도 정세가 20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한국일보는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서동만 상지대 교수,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와 함께 긴급 좌담회를 갖고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와 향후 남북·북미 관계의 전망을 짚어봤다.■정상회담 성과
윤교수=한미 양국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부시 대통령의 동북아 순방은 대테러전을 위해 동북아 3국의 협력을 얻는 것이었고 한일 양국으로부터 강력한 지지 약속을 얻어냈다.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의 협력 약속을 받아냈다.반면 부시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지지하면서 북한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대화할 의지를 천명한 것은 한국으로 고무적인 성과다.
박교수=이전 정상회담의 성과를 꼽는다면 '악의축'발언으로 한반도에 형성되었던 난기류가 일단 걷힌 것이다.사실 미국은 악의 축 발언 당시에도 북한에 대한 공격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군사전략적 차원이 아닌 국내 정치나 군수산업체 이익,미사일 방어(MD)구축 등을 위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을 가능성이 높다.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이 원래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서교수=악의 축 발언이 미국 군수산업 자본의 이해를 충족시켰다는 해석에 동의한다.부시 대통령은 오늘 회담에서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도 내비쳤다.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해외자본 유입규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한반도 긴장 고조가 미 군수자본의 이행에 부합한다면,금융자본은 긴장완화를 필요로 한다.하여튼 악의축 발언과 관련한 그간의 우려가 이 번 회담을 통해 해소됐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인식
박교수=확대 해석됐던 미국의 대북 공격의지가 해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 안보팀의 대북 인식은 변한 것이 없다.이미 지난해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한 '회의'를 극명하게 표출했다.그의 대북 적대감 및 불신은 신앙에 가까운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웬만한 북한의 변화로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스스로를 '십자군'(crusader)으로 상대를 '악'(evil)으로 규정하는 부시 대통령의 이분법은 "나는 정당하고 상대는 비합리적"이라는 정도를 넘어 상대를 구제되어야 할 악으로까지 몰아 붙인다.신념 차원의 대북 불신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본다.
서교수=부시 대통령은 발언의 톤을 낮췄지만 인식의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다.레이건 대통령 시절 옛 소련과의 협상사례를 든 점을 고려하면,일방적으로 북한에 협상에 임할 것을 주문한 셈이다.북미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겠지만 진전시킬 의지를 보이지도 않았다.북한정권과 주민을 분리,북이 협상에 나오든 안 나오든 주민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천명한 대목은 북한의 정권교체가 전제돼야 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갖게 한다.
박교수=레이건 식 공식을 북미 관계에 도입하면,미국은 물리적 공격을 하지는 않더라도 끊임없이 북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개입하는 정책을 펼 것이다.강제력을 사용하지 않지만 대북협상을 미국 중심으로 끌고 가고,북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 상당기간 북미관계 단절도 감수할 것이다.우리 정부는 대북인식에 있어 한미간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신축적 상호주의에 기초한 우리의 햇볕정책과 레이건식 대북정책의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윤교수=부시 행정부의 기본적 대외정책 기조는 현실주의다.레이건이 소련을 악의제국으로 규정했다 해서 소련을 무력 공격한 것이 아니듯,부시 대통령의 강경발언이 현실적 외교노선에서 큰 장애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이다.힘이란 협상을 통해 해결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미국의 대북 정책이 대화보다 군사적 행동을 우선에 두는 것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박교수=이번 회담에서 WMD관련 한미 공조 표명은 있었지만 재래식 무기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아직 북한과의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꼈을 것이다.WMD문제에 비해 재래식 무기의 후방배치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미국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받아들일수 없는 것처럼 북한의 재래식 무기 후방 재배치를 수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전진 배치된 부대를 후방으로 이동시키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미국이 구 소련의 핵시설을 폐기하는데 재정지원을 해줬듯,북한의 재래무기 후방배치에 상응하는 경제지원을 해줘야 진전이 있을 것이다.더구나 재래식 무기는 그 동안 한미연합 방위력으로 잘 억제되어 왔기 때문에 이 문제는 WMD 협상 이후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서교수=WMD협상을 해온 지 10년 가까이 됐는데도 아직 진척이 없다.재래식 무기는 훨씬 복잡하다.남북기본합의서 등 기존의 정책에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고 자칫 주권침해 논란까지 제기될수 있다.협상을 한다면 북한과 미국,남한 3자가 참여하는 중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다.
윤교수=9·11테러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의제가 돼 온 것이 WMD방지이다.재래식 무기는 당장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향후 북한과의 대화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될 문제다.부시 행정부는 주한미군을 포함,해외주둔 중무장 보병의 재편 필요성에 대해 논의 중이고,중장기적으로 전력배치의 전환을 꾀고 있는데 이의 일환으로 재래식 무기 협상을 진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햇볕정책 전망
박교수=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부시 대통령의 지지 천명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저부 때처럼 미국의 적극적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특히 우리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와 WMD에 대한 한미간 공조를 강조,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이는 지난해 3월 부시 대통령의 북한 지도부에 대한 회의표명 때처럼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이것이 현실화하면 단기적으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교수=대북지원의 핵심은 남측의 경제지원이다.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분리한 것은 대북 주민지원과 정권지원을 달리 다루겠다는 뉘앙스가 내포돼 있다.확대해석하면,우리 정부가 고려 중인 전력 등 대북 경제지원이 미국의 반대에 부딪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햇볕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미국의 북한 주민·정권 분리 입장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교수=부시 대통령은 이산가족 문제,경의선 연결등을 언급,남북관계에 힌트를 줬다고 볼 수 있다.남북관계가 잘되면 미북 관계도 잘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이로 인해 남북대화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낙관적 견해도 있다.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
윤교수=북한은 미국의 악의 축 발언과 관계없이 아리랑 축전 등 대규모 행사가 많이 예정돼 있어 남북대화를 통해 물자를 조달할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조만간 남북대화가 가능하리라고 본다.북미 대화의 경우 북안이 체제결속을 다진 후 월드컵 이후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관측된다.부시 대통령이 한중일 3국을 방문하면서 보내는 대북 메시지는 북미 대화 호나경 조성에 일조할 것이다.
박교수=북한은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지난해 3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의 복사판으로 볼 수 있다.북한이 자극을 받아 단기적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특히 북한은 자주 문제를 거론하며 우리의 대미의존 행태를 비판할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체제의 생존을 위해 외부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만큼 북미 및 남북관계 개선쪽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북한이 클린턴 행정부 때의 관계개선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한다면 냉각기를 거치고 난 뒤 조건 없는 북미대화에 응할 수도 있다.
서교수=부시 대통령의 경의선 발언 등으로 남북대화에 대해 미국측이 양해했다고 볼 수 있다.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따라서 북중관계를 동력으로 삼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가능성도 있다.북미협상도 여건이나 계기가 마련되면 이뤄질 수 있다.
■한미 관계 과제
서교수=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대가로 F15기를 사줘야 한다면 문제이다.이는 무기 구입문제는 자체 논리로 접근해야 하며,우리 외교는 동맹국 지지와 이것을 분리해 낼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박교수=미국은 우리의 핵심 동맹국이지만 외교에는 게임의 룰이 있다고 본다.한미간에 이견이 있다면 과감히 밝히고 받아들이기 곤란한 부분은 단호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미국이 햇볕정책을 비판,그 반대 급부를 쉽게 얻어낼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기게 되면 차기 정부에 부담이 되고 국가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
윤교수=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이번 정상회담까지 과정에서 동맹의 의미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우리는 미국이 무조건 우리 입장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이번 회담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은 양측간 이해의 균형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정리=박진용기자
노원명기자
▼박건영
45세.미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서동만
45세.일본 됴코대 정치학 박사.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윤덕민
43세.일본 게이오대 법학 박사.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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