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불치병… 죽음으로 눈물샘 자국 "아이디어 빈곤의 전형"뮤직비디오에 죽음이 넘친다. 천편일률적인 드라마에서 벗어나 참신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대형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도 결론은 언제나 ‘죽음’.
신승훈의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은 국내 최초로 ‘오브제 애니메이션’을 도입했다.
섬세하게 표정의 목각인형이 추억의 까만 교복을 입었다. 붐비는 버스 안에서 슬며시 가방을 들어주는 소년, 소녀의 순정이 애틋하다. 결말은 소녀의 죽음.
이승환의 ‘잘못’ 뮤직비디오에는 영화 ‘스타워즈’제작팀이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귀엽고 둥그스름한 로봇 ‘에그’(egg)가 등장한다.
몸이 불편한 소녀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계단에서 굴러 망가진 후 결국 휠체어의 형태로 그녀 곁에 남는다.
뮤직비디오로는 최초로 사극 형식으로 만들어진 명성황후 OST도 ‘황후 시해’라는 사건의 본질때문인지 화면에 선혈이 낭자하다.
이런 새로움마저 없는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다. 태무의 ‘별’의 등장인물은 휴전선에서 폭파사고로, 이수영의 ‘그리고 사랑해’는 교통사고로, 얀의 ‘아프고 아픈 이름’은 불치병으로 유영진의 ‘지애’는 폭력배에 의해 죽는다.
모두 애인을 눈앞에 두고 저 세상으로 가는 스토리로, 등장하는 배우와 죽음의 방법만 다르다.
뮤직비디오 감독들은 “보통 3~5분, 길어야 10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죽음만큼 드라마틱한 소재는 없다.
‘헤어진다’거나 ‘운다’보다 ‘죽었다’가 강렬하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죽음이 가장 쉬운 소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뮤직비디오는 계속 죽음을 향해 치닫는 길밖에 없을까. god의 ‘거짓말’, 연극 ‘백설공주와 난장이’를 소재로 한 이기찬의 ‘또한번 사랑은 가고’ 등을 만든 고영준 감독은 ‘죽음’을 자신의 작품에 단 한번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댄스곡은 물론, 충분히 ‘죽음’으로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김건모의 ‘미안해요’를 찍으면서도 애써 죽음의 유혹을 떨쳤다.
“‘죽음’으로 뮤직비디오 그 자체를 자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가수와 노래의 개성을 살리는 게 뮤직비디오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뮤직비디오를 점령하고 있는 ‘죽음’은 결국 ‘누가 어떻게 죽었다’는 사실만 뇌리에 남김으로서 뮤직비디오의 존재의미를 상실케 해 마냥 흥행의 지름길이나 안전판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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