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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生의 계보, 그 사랑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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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生의 계보, 그 사랑과 슬픔

입력
2002.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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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 '옥하리 265번지'전 6대 직계 초상화 31점 전시서울 종로구 관훈동 미술관 ‘사루비아 다방’. 다듬지 않은 시멘트 벽이 을씨년스러운 25평짜리이 지하 전시장에 특이한 그림이 걸려 있다.

한쪽 벽에는 세로 122㎝, 가로 244㎝의 대형 채색 풍경화가, 맞은 편 벽에는 세로 160㎝, 가로 130㎝의 대형 초상화 더미가걸려 있다. 휑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결코 세련되지 못한 투박한 초상화들. 서로 다른 인물을 그린 초상화 31점이, 그것도 ‘정면 전시’라는 상식을 깨고 겹겹이 겹쳐 전시돼 있다.

관람객은 하나하나 들춰가며 작품을 봐야 한다. 3월 3일까지 열리는 한국화가 김 을(48)씨의 ‘옥하리 265번지’전 풍경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 그림들을 ‘혈류도(血流圖)’라고 불렀다. 전시제목은 김해김씨 감무공사군파(監務公四君派) 종가가 있는 전남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265번지에서 따왔다.

작가가 태어나 열두 살 때까지 자랐던 곳, 외지에서 살다 명절 때 찾아가면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을 느끼던 곳, 바로 그곳이 ‘옥하리 265번지’다.

김씨는 “조상들의 묘가 있는 선산을 바라보며 느낀 기운, 빛 바랜 증조부 사진을 쳐다볼때 꿈틀거렸던 어떤 힘에서 내 뿌리를 찾았다”며 “핏줄을 타고 흘러온 조상들의 삶과 죽음, 사랑과 슬픔의 가족사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997년부터 해 온 작업의 결과가 증조부부터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증손녀까지 대형 캔버스에 검은 색 유화물감으로 되살아난 이들 초상화다.

마주한 풍경화는 물론 선산을 그린 것이다. 대형 캔버스 31점을 전시장에 다 걸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일부 있지만 가족들이 화면 속에서나마 가까이 모여 있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그림을 겹쳐 전시했다.

그림을 하나씩 들추며 그사이로 들어가보면 가족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멋있게’ 또는 ‘잘 팔리게’ 그릴 생각은 애당초 다 빼버리고 오직 ‘그려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그렸습니다. 밥 먹으면서 그리고, 왼손으로 그리고, 막대기에 붓을 묶어서도 그렸지요.”

그가 그린 초상화는 기법상으로 정교하거나 사실적인 매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얼굴은 대부분 입체감이 없고 평면적이며, 배경도 넉넉한 여백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물감이 밑으로 줄줄 흐른 작품도 있다. 그런데도 31점의 초상화를 들춰보며 묘한 공명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저마다의 ‘옥하리 265번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02)733-0440

글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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