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리였던 리오넬 조스팽 (LionelJospin)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시장경제이지 시장사회는 아니라고 말했다.그는 성장을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미국식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만의 바람이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들의 과제이기도 하고 또한 우리의 숙제이기도 하다.
1999년 교황은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우려를 표명했다. “순전히 인간의 경제적 측면에만 바탕을 둔 이 시스템은 이익과 시장의 법칙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개인과 인간이 누려야 할 위엄과 존경에 피해를 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온상인 미국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대단히 변했다. 대학 신입생들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실시하는 연례 설문조사에 따르면 1968년에는 ‘경제적 풍요’ 보다 ‘의미있는 인생철학 계발’이 중요하다고 말한 학생들이 무려 75%나 됐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1998년에는 순위가 뒤바뀌어 ‘경제적 풍요’가 더 중요하다고 답한 학생이 74%였다. 인생의 다른 측면이 희생된다 하더라도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경제적으로 더 불균형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약 270만명인 최상위층 1%가 보유하는 재산이 중하위 1억명의 재산과 맞먹게 되었다. 미국이 이들 부자들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이다.
경쟁적 개인주의가 심화되면, ‘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너의 이점을 극대화하라. 너를 팔아라.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라는 개인 철학이 팽배하게 된다.
지나치면 상호신뢰는 바보들의 법칙이 되고, 폭력이 일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모든 책임은 세금을 받아간 정부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늘 자신의 필요를 자기의 중심에다 놓고 그 생활 방식을 유일한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회 속에서는 ‘나도 살고 너도 살 수’가 없게 된다.
개인과 경쟁이라는 21세기의 핵심 개념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생활을 동시에 가져다 주기 위해서는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이 치열한 욕망들을 중화 시켜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남들보다 뛰어 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카지노 게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되는 방식의 존경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일상을 살아 가는 가치 체계와 생활 스타일의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과 다르게 된다는 것은 자신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자기다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가장 위대한 것, 즉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자신에게 속해있는 잠재력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그 주인이 된다는 것처럼 위대한 일은 없다. 위대한 길은 쉽게 끝이 나지 않는다. 이 길은 아주 길고 먼 여정이다.
옛날에는 자신을 판다는 말은 나쁜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팔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을 팔아라. 재능을 팔고 기술을 팔고 취향을 팔고 기질을 팔고, 지식을 팔아라. 그러나 영혼은 결코 팔지 말아라.
영혼을 팔게 되는 날, 그대는 사슬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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