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세계에서 가장 가는 나노선(線)을 만들어낸 포항공대 김광수 교수팀은 “이 선이 양자컴퓨터에 응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전도성을 가진 나노선이 양자 시스템 구축에 유용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또 지난 달 말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함병승 박사가 미 공군연구소와 공동으로 빛을 저장ㆍ재생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 소자를 개발해 주목 받았다.
‘신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 구현이 이론상으로 검증된 것은 약 18년 전. 나노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완전한 양자컴퓨터도 20년 후면 개발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서울시립대 양자정보처리연구단 안도열 단장이 최근 작성한 ‘양자컴퓨터연구 동향분석’에 따르면 양자소자의 크기 조정 및 에러현상이 극복되고 나노공정에 의한 양자집적회로 개발 등에 성공할 경우 2010년에는 소규모양자컴퓨터가 구현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1990년 대 말 미국에서 3자리 수 정도의 덧셈과 뺄셈 연산을 할 수 있는 7큐비트(qubitㆍ정보저장의최소단위) 양자컴퓨터가 개발된 데 이어 국내에서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이순칠 교수팀이 한 자리 수 연산 수준을 보이는 3큐비트 규모의 양자컴퓨터 개발에 성공했다.
■양자역학을 공학으로
양자컴퓨터는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가장 큰 업적인 양자역학이론을 최초로 공학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20세기초 등장한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이 담지 못했던 미시세계의 역학관계를 설명한 이론.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듯, 물질이 30나노미터 이하의 원자세계로 축소되면 운동의 법칙 등 일반적인 고전역학이 통하지 않고 ‘불확정성의 원리’로 대변되는 양자역학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원자핵이나 전자 등은 서로 간섭하는 파동성(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는 “6개의 기타 줄 중 하나를 튕긴다 해도 사실은 그 울림이 6개 줄 전체에 퍼져 복합적인 소리가 나는 것처럼,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전자나 핵등 각 요소들이 회절(回折)과 간섭을 하며 여러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일반 컴퓨터는 0, 1 두개의 경우의 수만으로 연산을 하지만 양자컴퓨터에서는 0도 아니고 1도 아닌 상태 혹은 00,01,10,11 등으로 중첩된 상태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안도열 단장은 “1,000개의 자릿수를 가진 숫자를 소인수 분해할 경우 1,600여 대의 컴퓨터를 병렬 연결해 처리해도 우주의 나이보다 많은 10의 25제곱 정도의 년 수가 걸리는 반면, 펜티엄 급 양자컴퓨터로는 수 시간 내에 풀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양자컴퓨터 구현의 핵심인 소자 개발 방식에는 광자를 소자로 이용하는 ‘포톤 양자 컴퓨팅’방식, 인공으로 원자를 만들어 이용하는 ‘이온 트랩’ 방식 등이 있다.
현재는 분자의 수소고리를 이용하는 핵자기공명(NMR)방식이 7큐비트의 초기연산 형태를 구현한 가장 앞선 형태다.
■양자컴퓨터 전쟁은 암호전쟁
양자컴퓨터가 완전히 구현될 경우 현재의 모든 암호가 몇 분 안에 풀릴수 있다는 점 때문에 각국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미국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2000년보다 2,000만 달러가 증가한 약 5,000만 달러였으며, 일본과 호주도 약 1,000만 달러가량을 쏟아 부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국내 양자컴퓨터 관련 연구비가 총 80만 달러 정도인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지만 실제 규모는 이를훨씬 초과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실제미국에서는 CIA(중앙정보국), NSA(국가안보국), DARPA(국방과학연구재단) 등 국가기관에서 양자컴퓨터 개발의 주요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순칠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양자전산 관련 특허가 100여 건인 넘어섰다”며 “양자컴퓨터 개발은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난 만큼 당장 개발에 성공하지 못해도 최소한 특허전쟁에는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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