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집값을 부추긴다.’금융권의 지나친 가계대출 경쟁이 집값 이상급등의 실질적인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금융권의 가계대출 행태를 바꾸지못할 경우 부동산가격의 버블과 버블붕괴에 따른 가계파산과 금융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빚내서 집투자
최근 집값 급등은 기본적으로 수급불균형에다 이를 노린 투기수요의 상승작용으로 설명된다.
투기수요는 일부 투기세력의 범주를 벗어나 전국민을 잠재적인 투기꾼으로 내몰 만큼 폭넓게 확산돼 있다.
잘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청약창구와 경매시장에는 돈다발을 쥔 투자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이 같은 투기수요 확산의 기저에 금융권의 가계대출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
금융권이 무분별하게 아파트담보대출 등을 통해 가계대출을 급격하게 늘린 것이 구매력을 자극, 집값 급등을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내집마련정보사가 지난 주 전국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순수하게 자기 자금으로 아파트를 살 계획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11%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89%는 모두 빚을 내겠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66%는 아파트 분양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믿고 있었고 43%는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프리미엄을받고 팔겠다는 투자자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예금은행의 신규 대출 규모는 모두 49조원. 이중 91.4%(44조8,000억원)가 가계대출에 집중돼 있다.
이에 따라 1996년 29.2%에 불과하던 가계대출 비중은 1999년 33.2%에서 2000년 38.3%, 2001년 3ㆍ4분기43.4%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가계금융부채의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급격한 가계대출 확대가 부동산투자로 곧바로 연결되면서 집값 등 자산가격의 가파른 상승을초 래, 부동산가격의 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부실 도미노
문제는 빚으로 쌓아올린 집값이 몰고올 후유증이다. 금융권의 급격한 가계대출 확대가 부동산가격의 버블 형성→금리상승과 경기위축→버블붕괴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가계파산→금융부실의 악순환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찍이 영국을 비롯해 일본과 북구 3국 등이 이 같은 전철을 밟았다. 국토연구원 박헌주 토지ㆍ주택연구실장은 “국내 주택시장의 흐름이 금융개혁 이후 부동산버블의 붕괴과정을겪었던 80년대 영국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86년부터 89년까지 4년간 영국의 집값은 연 평균 18% 이상 오르는 폭등세를 연출했다.
당시 대처 정부가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주택금융 규제를 완화, 일반 은행이 가계대출 경쟁에 본격 뛰어들면서 주택자금 대출이 해마다 23.6%씩 늘어난 것이 집값 급등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영국은 88년을 고비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상승 압박이 가시화하면서 부동산버블 붕괴의 홍역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주택가격 급락으로 주택담보가치도 동시에 하락, 91년에는 전체 주택수의 33%에 해당하는 755만가구가은행권에 무더기로 압류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일본도 마찬가지. 한국금융연구원 김동환 부연구위원은 “최근 은행권의 담보대출 증가 추이가 매년 20~35%씩 가계대출을 늘렸다가 자산가격의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시스템위기로 연결됐던 일본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행태는 이런 우려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주택시세의 60~70% 정도만 빌려주던 시중은행들이 올들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최고 100%까지 올리는 등 무차별 경쟁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을 늘리고 투기세력을 근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매력을 떨어뜨릴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도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연구실장은“금융권이 주택 담보가치를 하향 조정하도록 유도하는 등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