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하이닉스 반도체의 매각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가운데 채권단 내부에서 ‘감자(減資) 불가피론’이고개를 들고 있다. 하이닉스의 유통 주식수가 워낙 많아 거래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데다 마이크론에핵심사업부문(메모리)마저 떼줄 경우 회사 규모의 축소로 기존 주식가치의 하락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감자 불가피론'고개
대다수 채권은행들은 일단 ‘감자 불가피론’에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채권단의 고위 관계자는 14일 “하이닉스에 돈을빌려줬던 금융기관들이 지난 해 10월 말 하이닉스 정상화방안을 마련하면서 상당 규모의 부채를 탕감해 준데다 이번에메모리부문 매각이 성사된다 해도 추가적인 부채탕감으로 또 다시 손실을 떠안아야 할 처지”라며 “하이닉스에투자한 주주들도 마땅히 일정 부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론과 하이닉스가 합의한 매각방식을 따르더라도 이론상 감자는 불가피하다는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이크론은 ▦하이닉스의 D램 등 메모리부문만을 약 40억 달러에인수하되 ▦비메모리 잔존법인에 25% 가량의 지분참여를 하기로 하이닉스측과 잠정 합의한 상태다. 이 경우하이닉스는 연매출 9조원 대의 대기업에서 5,000억~6,000억원 규모의 군소 비메모리업체로 쪼그라들지만 주식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전망이다.
2조9,930억원(10억주)에 달하는 채권단의 출자전환(부채를 주식으로 바꿔주는 것)에다 마이크론의 지분참여(25%)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수순대로라면 최악의 경우 잔존법인의 주식수는 현재의 10억주에서 25억주로 불어나게 되고, 가뜩이나 알맹이(메모리)가 빠진 하이닉스 주식은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될 공산이 크다. 매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기존 주식에 대한 대규모 감자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채권단 일부에선 감자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우선 소액주주들의 대규모 집단반발이 예상되는데다 지난해 6월 하이닉스가 발행한 해외 DR(주식예탁증서ㆍ1억2,500만 달러 규모) 보유자(외국인주주)들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선 등 주요 정치일정을 앞둔 정부가 ‘표심’을거역하는 결정(감자)에 대해 비토를 놓을 것이란 점도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감자가 아닌 액면병합(주식수를줄여 액면가를 높이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이어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매각대금 40억 달러는 충분한가
하이닉스가 메모리 매각대금으로 받는 ‘40억 달러’(약 5조원)가 국내 채권금융기관에 진총 부채(약 10조원)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는 점도 감자 불가피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이닉스측은 40억 달러 중 최소한 10억 달러는 체이스모건은행을비롯한 해외 채권자들에게 우선 상환할 계획이다.
이 경우 국내 채권단에 돌아오는 몫은 30억 달러인데 감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 중 상당부분은기존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에 응하는데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가에선 매각결정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이 하이닉스에 집단으로 매수청구를할 경우 약 19억 달러(2조5,0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채권단으로선 매각대금으로 받을 마이크론주식이 협상 성사 뒤 크게 상승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긴 하지만, 나머지 10억 달러 안팎의 대금으로 ‘빚잔치’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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