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이 전통적 고립주의를 떨치고 세계 무대 주역으로 나섰을 때 앞세운 명분은 현실적 국익이었다. 26대 대통령 테어도어루스벨트(1901-1909)는 미국의 국익이 국제 세력균형 질서 동참을 요구하며, 국익에 거슬리는 나라는 힘으로 눌러야 한다고 보았다. 국제법질서보다 힘의 가치를 믿었고, 그 힘을 포기하는 군축은 어리석은 악덕이라고 했다. 아이티와 파나마 도미니카 쿠바를 힘으로 장악한 그는 1908년,국제 조약을 관철할 힘이 없는 대한제국을 일본이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그러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913-1921)은 유럽 중심의 국제 질서를 지배한 세력균형 논리와 전혀 다른 메시아적 명분을표방했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이상을 국제 사회에서 구현한다는 것이었다. 윌슨주의는 미국의 국제 경찰 역할을 소명(召命)에 비유했다. 이런 이타적 명분은 세계대전 참전에 이어, 공산주의 봉쇄정책의 이념적 바탕이 됐다.
루스벨트의 국익 논리는 이내 대중적 흡인력을 상실한 반면, 윌슨의 이상주의는 역대 대통령 모두가 답습했다. 미국의 도덕적 우월성을안팎에 확인시키는 매력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이 흔히 선과 악의 대결로 치닫는 것도 이런 이상주의 전통이 바탕이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부른 레이건의 강경한 냉전 정책이 대표지만, 키신저의 세력균형 외교를 앞세워 데탕트를 주도한 닉슨도 윌슨주의를 표방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석유이권을 지키기 위한 걸프전에 침략 응징이란 도덕적 명분을 내 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타적 도덕주의 명분에 잘 어울린 공산주의가 소멸하면서, 윌슨주의의 현실 적응성도 크게 떨어졌다. 이라크의 침략주의와 불량국가의대량살상무기 위협 등이 차례로 등장했으나, 20세기를 지배한 공산주의와의 대결 논리처럼 절박한 위기 의식을 국제 사회에 심지는 못했다. 클린턴행정부가 대체로 현상 유지에 만족한 것도 이런 형편을 헤아린 결과일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전부터 국익 수호를 위한 힘의 외교를 천명했다. 클린턴이 냉전 종식 뒤 새 질서 형성을 주도하고 경제적 영향력을확대할 호기를 놓쳤다면서, 국제 사회의 가치와 국제 기구나 협정 따위보다 오로지 미국적 가치와 국익을 추구할 것을 선언했다. 루스벨트 류의 국익우선 논리였다.
뉴욕 테러 사태는 유일 초강대국의 이기적 국익 우선 행보에 국제적 비판이 쏟아지던 바로 그 즈음에 터졌다. 미국은 테러 척결 전쟁을윌슨주의 차원으로 부각시켰다. 상처 입은 거인의 포효에 국제 사회는 서둘러 지지를 다짐했고, 아프간 전쟁이 중앙 아시아 석유 자원 등 전략적 이익을노렸다는 지적은 속삭임에 머물렀다. 그러나 뉴욕 테러의 기억이 흐려지면서 과연 대 테러 전쟁이 21세기의 인류적 과제인지, 빈 라덴과 탈레반 제거가인류 평화와 자유에 얼마나 이바지 할 것인지를 회의하는 국제 여론이 확산됐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이란과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대 테러 전쟁이 방향을 잃은 상황을 윌슨주의 강화를 통해 호도하려는 몸짓이다. 그러나 북한 위협론 등 낡은 가락으로 국제여론을 되돌려 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유럽 우방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도무지 아귀 맞지 않는 논리에 대한 반박이 잇따르고있다.
미국의 이상주의 외교도 늘 국익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윌슨과 루스벨트의 그림자는 겹치는 것이다. 그러나 힘의 논리를 앞세운부시가 뒤늦게 이상주의를 쳐든 것은 국제 사회를 현혹하기는커녕새 국제 질서를 이끌 비전의 결핍을 드러냈을 뿐이란 지적이다. 다행히 자제하는 듯한 부시가 한국에 오면 우리 국익도 존중하겠다는 변화를 보일 것을기대한다. 미국의 노래에 덩달아 춤추는 이 땅의 맹목적 추종자들은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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