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선대학에 근무하는 교수인데 황 현(黃 玹) 선생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일어로 번역한 책이 나왔으니, 본국 신문에 소개해 줄 수 있겠느냐 했다.도쿄에 있는 조선대학은 조총련계 교육 기관으로 일본에서는 우리 민족 유일의 대학이다. 그런 곳에 몸 담은 사람이 한국 신문에 나기를 바라는 것이 흥미로워 언제든지 환영이라 했다.
다음 날 초로의 신사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1990년 도쿄 근무시절의 일이다.
■ 박상득(朴尙得)이란 명함을 내민 그는 가방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놓았다.
민중의 편에서 시대사를 바라본 매천 선생의 역사관을 일본에 알리고 싶어 10년 걸려 번역을 했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자비 출판한 것이라 했다.
한국신문에 소개되면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괜찮겠느냐 했더니 “학문에는 이념이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는 얼굴에 각오한 듯한 표정이 어렸다.
■ 1927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 살 때 가족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도쿄(東京)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그 뒤 조총련 산하 중ㆍ고교 교사로 시작해 조선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기사가 나간 뒤 그는 종파분자로 낙인 찍혀 사상총화를 당했다.
이를 계기로 조총련과의 결별을 결심한 그는 1997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왔다. 고향마을을 둘러보고 선영에 엎드려 눈물도 흘렸다. 사망한 부모의 호적정리를 위해 국적까지 한국으로 바꾸었다.
■ 까맣게 잊었던 그에게서 지난 달 전화가 왔다. 13년 만이었다. 백발의 노인으로 변한 그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연개소문을 주인공으로 한 유현종의 대하소설 ‘조선 삼국지’ 일어 번역본이었다. 지금은 ‘한단고기’를 번역 중이라 했다.
그러면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에 가보니 아직 혁명군 가담자들의 명예회복이 되지 않고, 고부군의이름도 없어졌더라며 부끄러운 일이라 했다. 며칠 전에는 이를 시정하는 데 앞장서 달라는 호소문이 배달되었다. 그것도 모른 내가 더 부끄러웠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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