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근섭(韓根燮)씨가 한별텔레콤 해외전환사채(CB) 불법발행으로 챙긴 수백억원의 시세차익 중 상당액이 정ㆍ관계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검찰수사로 밝혀짐에 따라 게이트 정국에 또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한씨가 시세차익과횡령으로 벌어들인 돈 580억원의 사용처가 구체적으로 밝혀질 경우 정현준ㆍ진승현ㆍ이용호ㆍ윤태식씨 등 이른바 4대 게이트 이상의 파문이 일 가능성이 크다.
한씨는 1999년 1월 한별텔레콤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모두 14차례에 걸쳐 해외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발행했으나 이중증권거래소에서 공시한 5차례를 통해서만 무려 580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한별텔레콤의 주가조작 사건이 게이트로 비화할 소지는 다분하다. 우선 한씨나 ㈜G&G구조조정 이용호씨가 주가조작에 나선 시기가 일치하고 주가조작 수법도 빼닮았다.
이씨와 한씨는 회사만 다를 뿐 해외전환사채(CB)를 발행한 뒤 국내 사채업자자금으로 위장 매입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7~8배씩 띄워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매각,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겼다. 주가조작과정에서 생긴 시세차익이정ㆍ관계 로비자금으로 흘러들어간 것도 비슷하다.
한별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한 전 회장이 경영권을행사할 동안 공식적으로 발행된 해외CB와 BW만 5차례 580억원에 이르지만 실제로 회사에 유입된 돈 등은 50여억원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530여억원의 상당액을 금감원 및 정치권 로비에 쓴 것으로 안다”고말했다.
특히 한 전 회장의 측근들은 “지난해부터 한 전 회장이 올해 대선을 겨냥해 여야를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자금줄을 대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왔다”며 “특히 몇몇 거물들과는 구체적인 선이 닿아 있는 것으로 안다”고말해 정치권 로비가 광범위하게 진행돼 왔음을 시사했다.
한씨가 2년 가까이 CB 불법발행을 통해 수백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기면서 개미군단을 우롱했는데도 금융당국의 별다른 제재조치가 없었다는 점도 금감원에 대한 로비 정황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당시 한씨는 전문경영인인 신민구(辛珉具ㆍ구속)씨를 대표이사로 내세우는 대신 자신은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표이사직을 맡지 않은 채 회장 직함만을 사용하면서 자금운용의 전권을 휘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한근섭은 누구인가?
검찰 수배 중 해외도피한 한근섭(48)은 사채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한때 친인척 재산까지 탕진하며 바닥생활을 전전했으나 벤처열풍 때 B반도체 주가조작으로 목돈을 쥔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그는 기업인수와 ‘바지사장’ 채용, 인맥과 자금력을 동원한 불법행위 등 사채업계의 검은 수법으로 세를 키워 나갔다.
업계에서 기반을 닦은 한씨는 ‘큰손’ ‘전주’로 행세하는 한편 정ㆍ관계로 발을 넓히고, 인기 탤런트와염문을 뿌리는 등 사생활도 복잡해졌다. 그의 인맥은 1999년 여성 프로골퍼의 스폰서 계약 때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한데서 확인되고 있다.
그는C의원과 호형호제하는 것은 물론 평소 여권 인사들을 거명하며 친분을 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주가조작 조사와 검찰수사 등을 지연시키며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간 것도 이 같은 인맥으로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주변 인사들은 현재 한씨의 재산이 많지 않다고 전해, 제3의 인물이 사건의핵심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씨는 한별텔레콤 인수 이후 CB(전환사채)ㆍ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14차례 발행했고, 한 차례에 최대 100억원의차익을 남겼다. 또 한별텔레콤의 자본금을 50억원에서 220억원으로 늘리면서 약 700억원을 회사에 유입시켰다.
더구나 별다른 사업을 하지 않던회사는 2000년에 5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비록 한씨가 주식투자와 문란한 생활로 일부 재산을 탕진했지만, 회사돈을 모처로 빼돌렸다는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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