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보고싶은 이 만나는 일 미루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제 글을 보시고는 한 어른이 반갑게도 전화를 주셨다.전화를 주신 어른은 작년에 훌쩍 회갑을 넘기셨는데, 한 평생꽃과 벗하며 살아온 덕분인지 당신이 꽃같은 분이시다.
우리는 서로 첫 눈에 반하여(?)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처음 만나던 날 그 어른은 지금도 내기억 속에 생생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어른에겐 어릴 때부터 오빠ㆍ동생하며 지내오다 마음 가득 서로를 품게 된 오라버니가 한 분계셨단다.
그 오라버니가 고운 화선지 위에 얇은 붓으로 써보내오는 연서(戀書) 속엔 영혼을 울리는 감동의 소리가 가득했다셨다.
그 연서를 남동생에게도 보여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남동생은 “누이, 우리이 편지로 방하나 가득 도배하자” 조르곤 했단다.
한데 그 오라버니에겐 집안끼리 정혼한 언니가 있었단다.
오라버닌 결혼하기 전 날도 “네가 한마디만 해주면 난이 결혼 물릴수 있다”했다는데, 이어른 생각으로는 두사람의 사랑도 소중하지만 집안간의 약속 또한 깨는 것이 도리는 아니라 믿었기에 “오라버니, 행복하게 잘 살거라”며 등떠밀어 보냈다고 한다.
오라버니가 결혼한지 얼마 후 이 어른도 대학을 졸업하게 되어, 믿을만한 분의 소개로 지금의 ‘아빠’(남편을 부르는 애칭이다)를 만나 결혼을 하셨단다.
자신의 결혼소식을 전해들은 오라버닌 집안의 장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와 같은 하늘 아래선 살수가 없구나” 한마디를 남기고는 미국으로 이민 길을 떠났고,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셨다.
한데 무슨 운명인지, 이 어른의 남편이 사업차 미국으로 가게 되어 자신도 미국 땅을 밟게 되었는데, 미국생활도 거의 끝나갈 무렵 뜻밖의 자리에서 우연한 해후가 이루어졌단다.
그 오라버니가 등뒤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데, 순간 자신이 립스틱을 바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져 얼른 손이 입으로 가더란다.
그 때 자신의 손을 보니꽃 작품을 하다 도중에 온 길이라 손톱엔 흙이 가득하고 손마디는 거칠기만 한것이… 그저 빨리이 자리를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다.
꿈같은 해후를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오는데 왜 그리도 눈물이나던지… 며칠뒤 그 오라버니로부터 다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을 땐 “오라버니, 우리 서로 간직하고 있는아 름다운 모습 그대로 놓아두고 다시 만나진 말자” 달래셨단다.
이 어른이야기인 즉, 젊은 날의 지고지순했던 사랑 가슴깊이 품고 살아온 덕분에 저녁 노을이 예사롭지 않았고, 봄이 오는 길목의 두근거림이 더했으며, 가을이 가는 소리 그대로 놓칠 수 없었기에 오라버니와의 사랑을 한없이 감사한다 셨다.
그렇다고 지금의 남편에 대한 소중함, 당신 가족을 향한 사랑, 한번도 의심해본 적 없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한 조각의 후회도 없다 셨다.
이 어른이야길 반추하자니, 요즘 젊은 세대는 이런 기막힌 사랑 이해할 수 있으려나 괜한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하기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휴대폰에, 24시간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에, 만남의 빈도가 촘촘해진 디지털 세대의 경우 6개월쯤 만나면 이미 ‘오래된 연인’ 범주에 든다하니, 사랑하는 사람떠나보내고 그 기억을 그리움 속에 녹여내는 아날로그 세대의 사랑이 어찌 이해될 수있으랴.
이제 설연휴가 끝나면 젊은이들의 축제, 발렌타인 데이가 온다.
사랑도 세월 따라 그 의미가 변화되고 그 방식도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리라 이해는 하면서도, 웬지 사랑의 진심이 ‘달콤 쌉싸롬한’ 초콜릿에 밀리는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한데 더더욱 한심한 건 초콜릿 사는 대열에 합류할 나 자신인 걸 어찌하나...
함인희ㆍ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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