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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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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일정이 촉박해 본격적인 산행은 못하고 간단히 노고단에만 올랐습니다.해발 1,507㎙의 높은 산에 오른 것을 ‘간단하다’고 하다니. 그러나 지리산에 대해 조금만 안다면 왜 간단한지 이해할 것입니다.

지리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례와 남원을 잇는 861번 지방도로죠.

차를 타고 노고단 턱밑인 성삼재까지 오른 후 산보하듯 걸으면 금방 노고단입니다.

몇 년 만에 찾아간 노고단. 그러나 산행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불쾌했다는 표현이 더 옳겠죠.

찻길의 높은 구간은 눈이 완전히 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립공원 측이 통제 표지판을 걸어 놓았습니다.

구례쪽에서 출발할 때 성삼재에서 약 2㎞ 아랫쪽의 시암재 휴게소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고 씌어 있었습니다.

매표소 직원도 시암재 휴게소에 차를 세우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말 잘 듣는 모범생처럼 시암재에 차를 세우고 성삼재까지 2㎞를 더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바리케이드를 걷어내고 승용차가 한 대가 지나 올라가더군요.‘참 말을 안 듣는군.’ 속으로 생각했죠.

그리고 ‘성삼재에서 공원 직원들이 되돌려 보내겠지. 기름만 낭비하겠군’이라며 오히려 그 운전자를 측은해 했습니다. 그런데 올라간 차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성삼재에 닿았습니다. 그 곳에 주차한 차는 한두 대가 아니었습니다. 30여대는 족히 됐습니다.

아이들을 태우고 온 가족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주차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니, 통행금지된 구역에 차가 들어왔으면 돌려보내야지 정식으로 주차료까지 받고 있다니. 도대체 통행을 금지한 것인지, 허용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산이 높아서 그런가. 산 아랫동네와 윗동네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노고단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에도 마찬가지로 남보다 2㎞를 더 걸었습니다. ‘보너스’라 생각하니 그리 억울하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산행을 했던 사람들이 차를 타고 지나쳐 내려갔습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혼자 걷는 사람이 눈에 띄었는지 차 속에서 빤히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면 하나같이 표정이 묘해졌습니다.

키득키득 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에그, 이 요령부득한 양반아’라며 비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질서를 지키려 했던 사람은 결국 완전히 바보가 됐습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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