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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 유명미술가 '한지붕 8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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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 유명미술가 '한지붕 8가족'

입력
2002.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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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신사 고영훈, 재기발랄 전병현, 착한 막내 이동기, 반질 상큼 반미령, 터프 가이 배병우, 고진감래 유선태, 그림귀신 사석원, 불덩어리 임옥상….사람 좋고 그림 좋기로 이름난 작가 8명이 힘과 뜻을 모아 가슴 벅찬 새 사업을 시작합니다. (중략) 천지신명, 온갖 귀신, 저희를 믿어주세요. 상향.”

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때 아닌 축문 읽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중미술 출신의 작가 임옥상(52)씨가 ‘가나 아틀리에’ 개소식을 맞아 고사상 앞에서 손수 작성한 축문을 읽은 것이다.

‘가나 아틀리에’라는 연건평 300평짜리 현대식 3층 건물에 작가 8명이 입주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한지붕 가족’이 된 이들의 면모는 다양하다.

먼저 고영훈(50)씨는 10여 차례 개인전을 가진 극사실주의 작가이고, 전병현(45)씨는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서양화가, 이동기(35)씨는 ‘아토마우스(아톰+미키마우스)’라는 독특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평면작업을 해오고 있는 젊은 작가이다.

반미령(38)씨는 일본 도쿄예술대 대학원(유화 전공)을 졸업한 ‘홍일점’.

배병우(52)씨는 수묵화 같은 사진 작업, 사석원(42)씨는 평면과 조각 분야를 오가는 폭 넓은 작품활동으로 유명한 작가다.

서양화가 유선태(45)씨는 프랑스 파리 국립8대학(조형예술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땄다. 평면ㆍ입체ㆍ사진 분야에서 정진하는 30~50대 작가가 망라된 셈이다.

화랑 가나아트센터(대표 이옥경)가 작년 말 입주작가로 선정한 이들은 앞으로 1년 동안 이곳에서 돈 한 푼 안내고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잠만 각자 집에서 잘 뿐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작업으로 보낸다.

하나은행이 3년간 건물 임대료9억 원을 부담하고, 가나아트센터는 관리비를 책임지기로 했다.

대신 작가들은 하나은행 몇몇 지점 로비에서 그룹전을 갖고 가나아트센터에는 작품1~2점씩을 무상 기증하는 조건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국립현대미술관, 영은미술관, 쌈지아트스페이스 등 국ㆍ사립 미술관이나 사설 화랑이 운영하는 기존 작가 공동체와는 차이가 있다.

기존 시스템이 공모를 통해 작가에게 작업실을 무상 임대하는 개념이라면 가나 아틀리에는 화랑이 가능성과 작품성을 토대로 작가를 선정해 작품 판매와 개인전ㆍ그룹전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다.

각 작업실은 20~40평 규모로작가들 저마다의 ‘소(小)우주’였다.

개성이 워낙 다르고 뚜렷한 만큼 1월 초부터 들어찬 각종 작업도구와 간단한 살림살이는 이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층에 있는 사석원씨 작업실은 작가의 부지런한 성격을 그대로 닮아 벌써부터 작업의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한쪽 바닥에는 작업 중인 캔버스가 6점, 다른 쪽에는 아라비아 상인을 태운 노새 조각 3개가 놓여 있다.

2층의 작가 임옥상씨는 이 작업실을 보고 “역시 작품은 고민을 안 해야 빨리 나온다”고 농을 건넸다.

2층 고영훈씨 작업실은 박제한 오리 날개, 허름한 구두 등 그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한 온갖 오브제가 한 켠 책장에 가득 쌓여 있고, 3층 배병우씨 작업실은 사진작가답게 큼직한 암실과 첨단 현상ㆍ확대기가 눈에 들어온다.

고씨 작업실을 둘러본 다른 작가들은 “깔끔함도 이 정도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입주 작가들은 서로의 작업에 대한 경쟁심과 호기심, 앞날에 대한 기대와 부담감으로 매우 복잡한 표정이었다.

컴퓨터로 출력한 배씨의 커다란 사진작품을 보고는 “이거 출력할 때 종이가 엉키지 않나요?”(고영훈)라며 궁금해하는가 하면 작업실에 할로겐 램프까지 단 임옥상씨의 작업실을 보고는 “형님이 이걸 다 달았어요?”(전병현)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옆에 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사석원씨의 말에 “다른 작가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누가 마음 편히 퇴근하겠는가”(유선태) “선배 작가들이 모여 있는 공적인 장소라 아무래도 부담스럽다”(이동기)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친목도모와 원활한 공동체 생활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질펀한 술자리를 갖겠다”는 임옥상씨는 그래서 축문에 이렇게 썼다. 그리고 그자리에 모인 모두가 공감했다.

“저희는 그저 정직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미술인입니다. 거저 먹을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일 안 하면 꾸짖어 벌주시고, 그림 나쁘면 좋은 그림 그릴 때까지 사랑하고 격려해 주시옵소서. 세상을 아름답고 멋지게 만드는 아틀리에가 되겠습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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