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을 갉아온 정신분열증을 스스로 극복하고 노벨상 경제학상(1994년)을 수상한 존 포브스 내쉬.노벨상 뿐만 아니라 2002년 아카데미 또한 광기어린 그의 삶에 경외를 바칠 가능성이 높다.
아카데미의 전초전 격인 올해 골든글로브(작품상,남우주연상, 여주조연상, 각본상 수상)가 이미 그랬고, 장애를 극복하는 고독한 영웅의 휴먼스토리에 곧잘 감동하는 아카데미의 입맛에도 맞다.
‘뷰티풀마인드’(A Beautiful Mind)에서 50여년에 걸친 존 내쉬의 삶과 정신을 스크린으로 옮긴 러셀 크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오락영화지만, 마음을 열고 사람을 이해하고 연민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고 소감을 밝혔지만, 그는 아카데미를 위해 또 다른 수상소감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가족을 잃고 검투사로 전락한 비장한 로마의 막시무스 장군(‘글래디에이터’)은 러셀 크로의 낮고 울림깊은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표현 가능했다.
그러나 존 내쉬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뷰티풀 마인드’는 실비아 네이사의 동명 소설에서 출발했으나 몇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픽션으로 재구성했고, 러셀 크로는 현실의 존 내쉬가 아닌 영화 속의 존 내쉬를 만들어내야 했다.
20대의 존 내쉬는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으로 프린스턴 대학에 입성한, 동료들에 비해 배경이 취약하지만 오만한 수학 천재였다.
스스로 “지성에 비해 감성이 부족하다”고 밝히던 그의 최대과제는 ‘독창적(original)’인 아이디어.
기숙사와 도서관의 유리창을 칠판 삼아 그는 연구에 골몰하던 중 우연히 들른 술집에서 금발미녀를구하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뒤엎는 ‘균형이론’을 창출한다.
동료를 누르고 원하는 대로 MIT교수가 된 존 내쉬는 의기양양하다.
소련의 비밀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비밀리에 투입된 것도 그의 자긍심을 더한다.
MIT 물리학도 알리샤(제니퍼코넬리)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까지 이르지만, 존 내쉬의 삶의 곡선은 갑자기 가파르게 꺾여 버린다.
오만한 수학천재는 이미 정신분열증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현실이 아니다. 음모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존 내쉬는 가방을 가슴에 꼬옥 껴안고 약간 꾸부정한 걸음걸이로 프린스턴 교정을 걷는다.
그의 독특한 걸음걸이야말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천재의 코믹하면서도 애처로운 모습이다.
러셀 크로는 수줍음 많으면서도 오만하고 야망이 컸던 20대부터 자신만만하던 교수시절, 전기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처절함, 그리고 분열된 정신세계를 인정하면서 안정을 찾은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검투사가 저렇게 바뀔 수 있나’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뷰티풀 마인드’는 천재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 위에 흥미있는 드라마를 풀어놓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현실’은 아니지만, 존 내쉬가 정부비밀요원 윌리엄 파처(에드 해리스)를 만나 암호해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미스터리적 요소와 프린스턴 시절 내쉬의 자유분방한 삶에 대한 욕구를 대변한 룸메이트 찰스 허만(폴 베터니)과의 에피소드 등을 가미했다.
물론 모두 픽션이다.
감독 론 하워드와 각본을 담당한 아키바골드만이 존 내쉬에 대해 알고 있는 진실은 몇가지에 불과하다.
20대에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제학 이론을 내놓은 수학 천재였고, 정신분열증을 앓았으며, 이같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것.
그러나 그들은 몇 안되는 사실만을 단초로 존 내쉬의 삶과 정신세계를 뛰어난 상상으로 엮어 나갔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뷰티블 마인드' 휴머니즘으로 오스카 녹일까?
12일로 예정된 제7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작 발표를 앞두고 할리우드 외신들이 후보 점치기에 막바지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이렇다 할 대작이 없었던 할리우드의 처지를 반영하 듯, 올해 거론되는 후보작으로 지난해 리들리 스콧의‘글래디에이터’처럼 뚜렷한 ‘강자’가 없다는 점이다.
최대의 관심 대상은 남우주연상. 지난해 ‘글래디에이터’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러셀 크로가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 역으로 ‘2연패’를 하느냐.
그러나 ‘알리’에서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생애를 열연한 윌 스미스, 딸을 지키려는 정신박약 아버지로 나온 ‘나는 샘(I Am Sam)’의 숀 펜,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The Man Who Wasn’t There)’와 ‘괴물들의 진치(Monster’s Ball)’에서 연기력을 과시한 빌리 밥 손톤, ‘라이프애즈 어 하우스’의 케빈 클라인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윌 스미스가 수상하면 1963년 시드니 포이티에 이후 흑인 배우로는 처음.
‘뷰티풀 마인드’는 휴머니즘을 중시하는 6,000명의 오스카 심사위원단들이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이미 올해(제59회)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해 현재로서는 가장 여유있는 입장.
골든글로브에서 찬밥 대접을 받았던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리들리 스콧의 ‘블랙호크 다운’,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로버트 알트먼의 ‘고스포드 파크(Gosford Park)’, 뮤지컬 ‘물랑루즈’ 등이 후보를 다툰다.
감독상은 로버트 알트먼, 론하워드, 피터 잭슨, 리들리 스콧, 마이클 만, 크리스토퍼 놀란 등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여우주연상은 ‘침실에서(In The Bedroom)’의 시시 스페이섹과 ‘디 아더스’의 니콜 키드먼, ‘아이리스(Iris)’의 주디 덴치 등이 후보에 오를 것이 확실하다.
아카데미 영화제에는 모두 248편이 출품됐고, 최우수 작품상은 회원전원이, 나머지 21개 본상은 전문가 회원그룹이 결정한다.
시상식은 3월 24일 새로 개관한 할리우드 코닥극장에서 우피 골드버그의 사회로 열린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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