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2월1일 ‘모든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율은 31.4%로서 남자 38.7%, 여자 23.9%로 남자가 여자보다 1.7배 더 많은 유병율을 보였다’고 발표하였다.보건복지부는 이번 조사는 전국 규모의 정신질환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로서 WHO(세계보건기구)가 개발한 조사도구인 K-CIDI(Composite InternationalDiagnostic Interview)를 이용하였으므로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첫 체계적 역학조사
이 발표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결과의 신뢰성이나 타당성, 또는 유병율이 높은 것이냐 낮은 것이냐, 다른 나라보다 정신질환자가 더 많으냐 적으냐, 등등의 논란 이전에 이제서야 우리 나라도 국제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정신질환 역학조사가 이루어졌다는 데에 큰 뜻이 있다.
우리 나라는 정신보건법까지 만들어 정신보건정책을 수립하면서도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의 역학 통계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했었다.
실제적인 조사 없이 여러 나라의 통계를 참고로 우리의 정신질환자 수를 어림으로 추정해서 정책을 세워 왔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국가적 사업으로 체계적인 역학조사가 이루어 진 것이다.
더구나 이 CIDI 조사는 국가간의 비교도 가능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아쉬움 또한 크다.
현대복지국가에서 큰 문제가 되는 노인환자(치매)와 산업사회에서 커다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각종 마약과 습관성 약물중독은 앞으로 국가의 정신보건정책에서 큰부분을 차지할 것인데도 연구 방법상의 문제 때문에 이번 연구에서 제외되었다.
별도의 연구가 있어야 한다.
언론이 이 뉴스를 다루는 태도에서 ‘아니, 우리 나라에 정신질환자가 그렇게 많아’ 라며 놀라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31.4%라는 평생유병율은 내용을 자세히 알고 나면 그렇게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다.
'마약ㆍ치매' 빠져 아쉬워
언뜻 생각하기에‘우리나라 사람 셋 가운데 하나는 일생에 한번쯤 정신병에 걸린다니 얼마나 무서운 얘기냐’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장애인 등록 대상이 될 수 있는(한편으로는 정신보건법에 의하여 강제입원의 대상이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교도소보다 치료감호의 대상이 되는) 중증 정신병인 정신분열병과 양극성장애를 합한 것의 평생유병율이 1.17%, 여기에 일부가 중점적인 치료대상이 되는 중증 우울증을 합해야 3-4%다.
31.4%의 대부분은 알콜중독16.3%, 담배중독 10.23%,신경증 9.1% 등 이다.
평생에 한번쯤 속칭 신경성 소화불량을 경험했거나, 윗사람 앞에만 서면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 즉 좀 불편하기는 해도 국가가 우선은 크게 신경 안 써도 되는 신경증(속칭 노이로제)환자나, 끊고 싶어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골초들도 정신질환자로 포함되었다는 것을 알면 우리 나라에 정신질환자가 너무 많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술꾼, 골초, 및 중증이 아닌 신경증 때문에 정신질환자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생각 또한 위험하다.
이들은 비록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아도 본인들은 괴롭고, 또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데에는 다른 어떤 육체적 질병 못지않아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정신건강 증진사업에 포함시켜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 대책 적극 확대를
이번 조사연구는 지금까지 중증 정신병, 치매 등 극히 일부의 눈에 띄는 정신질환에 대해서만 국가가 정책적으로 개입하여 정신건강증진대책을 세우던 것을 더욱 확대하여 국민의 1/3을 차지하는 다른 여러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김이영ㆍ성균관의대 교수ㆍ삼성서울병원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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