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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4회 브라질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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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4회 브라질월드컵

입력
2002.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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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으로 월드컵은 12년간 중단됐다. 1946년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는 4회 대회를 49년에 브라질에서 개최키로 결정했으나 예선기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50년으로 1년 연기했다. 총회는 또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고려, 개최국에 준비여유를 주기 위해 5, 6회 대회 개최지까지 결정했다.50년 대회를 통해 축구종주국 잉글랜드가 월드컵에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2차대전 직전까지 초청경기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어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잉글랜드는 미국에 0_1로 패했다. 사람들은 잉글랜드가 10-1로 승리한 것을 신문이 오보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패배였다.

잉글랜드는 53년 무패의 웸블리구장에서 헝가리에 3_6의 참패를 당해 또 한 번 수모를 당했다. 54년 스위스대회 준준결승서 우루과이에 2_4로 패하는가 하면 58년 스웨덴대회 무승, 62년 칠레대회 1승 등 66년 자국의 월드컵에서 우승하기까지 세계축구의 주변국 신세로 전락했다. 세계축구의 발전수준을 등한시 한 결과였다.

4회 월드컵은 기존의 토너먼트 방식과 달리 16개 팀이 4개조로 나뉘어 리그를 벌인 뒤 각 조 1위가 풀리그로 우승을 가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토너먼트 방식은 경기수가 적기 때문에 리그로 해야 재정적 수입이 보장된다는 브라질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이 대회는 22개 경기서 133만7,000명의 관중을 끌어 모았다.

결승리그 최종전은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대결이었다. 2승을 올린 브라질은 1승1무의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다. 2년동안 철야작업 끝에 건설한 세계최대의 마라카낭 스타디움엔 19만9,854명(실제로는 25만명 추산)이 입장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1_2로 패해 우승을 다음 대회로 연기해야 했다. 역전 결승골이 터지는 순간 경기장에선 69명이 기절했고 경기장 밖에선 자살자와 심장마비 사망자가 2명씩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나빴던 점은 정치ㆍ경제적으로 불안정했던 브라질 국민 사이에 불의의 패배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확신이 더욱 확산됐다는 사실이다. 개최국 성적이 국민사기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유승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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