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너구리 잡는 걸 연출할 수 있나요.” “이번 너구리 연출사건은 방송사의 공익성을 크게 훼손시킨 것입니다.” “왜 잘 살고 있는 너구리를 잡습니까.”1월 26일 너구리 포획 장면을 연출해 방영한 MBC 오락 프로그램 ‘! 느낌표’의 ‘다큐멘터리_이경규 보고서’에 대한 시청자와 시청자 단체의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비난이 거세자 방송위원회도 5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프로그램에 대한 징계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다큐멘터리_이경규 보고서’ 제작진은 서울 양재천에서 너구리를 포획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장면을 놓치자, 잡은 너구리를 풀어주고 다시 잡는 장면을 마치 너구리를 처음 포획하는 것처럼 연출해 방송했다.
장시간 인적ㆍ물적 자원을 들여 체계적인 촬영작업을 벌여야 하는 다큐멘터리를 무리하게 오락 프로그램 코너로 끌어들인 것부터가 문제였다.
자연다큐 전문 PD들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무리하게 오락화함으로써 무리수를 둔 것 같다. 하나의 자연 다큐 제작에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여가 걸린다” 고 말했다.
결국 지난 3개월 동안 서울 양재천의 밤 풍경과 이따금 모습을 나타낸 너구리만 보여주면서 조급증이 발동한 제작진이 정작 중요한 장면을 놓치자, 흥미를 위해 조작까지 하게 된 것.
전문가가 아닌 개그맨에 불과한 이경규가 동물과 자연에 대한 총체적 이해없이 단순하게 시청자를 웃기려고만 해 다큐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도 이 코너의 문제점.
“오늘도 뒤로 걷는 사람이 등장하네요”, “여전히 나타나는 것은 왜가리뿐이군요” 라는 개그성 대사로 일관해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환경을 만들자는 거창한 기획 의도는 처음부터 거짓말이 됐다.
이번 사건은 또한 다큐의 상식조차 모르는 제작진의 실수를 여실히 드러냈다.
자연다큐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해 온 EBS 박수룡 PD는 “ 미국의 디스커버리나 영국 BBC, 일본 NHK도 동물을 비롯한 자연 다큐를 제작할 때 불가피한 경우에는 연출 장면을 삽입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자막 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알린다”고말했다.
연출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시청자의 항의가 있은 후에야 뒤늦게 담당 책임 연출자가 연출 사실을 마치 ‘양심선언’처럼 밝힌 것은 시청자를 우롱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조작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KBS TV의 ‘수달’에서도 있었다.
경실련 미디어워치 김태연 부장은 “시청률 경쟁의 첨병인 오락 프로그램이 소재의 고갈로 한계에 도달하면서 ‘느낌표’는 공익성과 오락의 조화를 탈출구로 삼았지만 기형적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청률 경쟁 때문에 방송의 소재가 되는 것만으로도 야생동물은 피해를 본다”는 뼈아픈 지적도 덧붙였다.
배국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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