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9일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함에 따라 이른바 ‘깡패국가’로 불려온 ‘테러 지원국’ 명단의 변화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국무부는 매년 5월 세계 테러 보고서와 테러 지원국 명단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들 3개국과 쿠바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 7개국이 1993년 이래 줄곧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돼 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이들 중 3개국만을 이른바 ‘신추축국’이라고 거명면서 미국을 위협하는 국가라고 밝혀 나머지 나라들이 올해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나머지 4개국은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소극적이나마 동참해왔다. 따라서 대 테러 연대 협력 여부에 따라 ‘적’과‘동지’를 구분하겠다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미국으로부터 ‘특혜’를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테러 지원국들과 미국
쿠바는 탈레반 전사들과 알 카에다 포로들의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수용을 묵인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은 “테러 근절이라는 목표에는 미국과 이견이 없다”며 미국을 두둔하고 나서는가 하면, 포로들에 대한 의료 지원을 공식 제의하기도 했다.
시리아는 9ㆍ11 테러범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대 테러 전쟁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 지난해 10월 미국의 묵인 하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에 선출됐다.
아프간 전쟁 이후 주요 확전 대상국으로 꼽혔던 수단도 알 카에다 등 자국내 국제 테러조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미국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리비아는 테러 지원국으로 지목된 주된 이유인 1988년 미 팬암기 폭파한로커비 사건과 관련, 최근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에 전향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미국과 반대 급부의 ‘거래’를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라크는 미국의 대 테러전을시종 강도 높게 비난해왔고, 북한은 모든 테러에 반대한다는 원칙만 표명하는데 그쳤다. 이란의 경우 초반에는 대 테러 전쟁 동참 의사를 밝혀 기대를 모았으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대한 무기 밀수 사건 등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가 오히려 악화했다. 미국은 이란이 아프간 내부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신추축국들’의 반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관련국들의 반발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30일 주재한 각의에서 “부시 대통령은 ‘전쟁광’이며 그의 연설은 호전적이고 무례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은 9ㆍ11 테러 이후 모든 면에서 독선적 모습을 보여왔다”면서 “미국의 대 이란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말 카라지 외무부 장관은 31일 뉴욕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아랍 17개국 내무부 장관들도 미국이 대표적 테러단체로 지목한 헤즈볼라 등을‘합법적인 저항단체’라고 반박하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이 테러 국가”라고 주장했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스 등 영국의 주요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을 물리치겠다는 연설이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들을 분열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들은 북한과 이란을 이라크와 한 통속으로 취급한 것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본 것이며 아시아, 유럽, 중동의 새로운 동맹들을 멀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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