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만큼 인간의 영혼에 음울하고 날카로우며 기이한 영향을 미치는 곳이 있을까?”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렇게 말했다.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의 화려함을 간직한 ‘북유럽의 파리’, 각지에서 징용된 4만 명 민초들이 실어 온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지은 ‘하얀 뼈 위에 세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깊이 사랑한 한국인이 자신이 체험한 도시의 기록을 적었다.
그렇다고 여행 가이드북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차가운 땅 러시아 예술가들의 뜨거운 숨이 들어 있는 인문 에세이다.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책세상발행)를 펴낸 이덕형(41) 성균관대 교수를 만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얼마나오래 있었는지.
“1991년 5월에 처음 방문했다. 그곳 대학에서 러시아 역사철학을 공부하게된 것을 계기로 삼아서다. 그때부터 매년 한두 달씩 머무른 게 10년이 넘었다.”
-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선택했는가.
“경제 성장에 대한 열광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스크바와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어수룩한’ 편이다. 부스러지는 것 같은 인상이라고 할까. ‘백야’도 인상적이었다. 가슴이 뛰면서 도시에 대한 열병을 앓게 됐다. 1960년대의 뒤처진 한국 도시를 연상하게 되기도 하고.”
-러시아에서 상트페레르부르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890년부터 1920년까지 화려하게 빛을 발한 도시다. 그리고 혁명 이후 80년 넘게 침묵해 왔다. 도시에는 과거의 빛과 현재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유럽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곳교수들은 프랑스어로 편지를 쓸 정도로 ‘북유럽의 파리’로서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
“동상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정교회는 18세기 초까지 조각상이나 기념물을 우상이라고 생각해서 금지했다. 그런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표트르 대제의 청동기마상이 세워졌다.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상징물이다. 한편으로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은 현재의 비극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레닌 동상의 손이 술집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비꼰다. 동상은 러시아의 역사 속에서 과거와현재의 단절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러시아를 알기 위해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보면 어떨까. 푸쉬킨의 소설을 읽거나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듣는 것,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를 보는 것,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는 것 말이다. 어떤 예술 장르든 러시아의 숨결이 스며 있다.”
-러시아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정치나 경제적인 관점으로 분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의 문화적인 잠재력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거칠고 투박하고 불편한 나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예술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혁명은 결국 실패했다지만, 다른 무언가를 무기로 삼아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영기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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