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개들이 짖어댄다. 카메라를 비롯한 방송 장비와 30여명의 제작진 등 낯선 풍경에 대한 경계다.난생 처음 방송출연 때문인지 시골 아줌마들은 모처럼 화장을 곱게 하고는 설레는 마음을 진정할 수 없어 계속 거울을 본다.
논과 밭이 펼쳐진 전북 익산시 용안면 덕성리 순풍부락.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린 29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SBS ‘토요일이 온다’ 의 한 코너인 ‘고향에 가자’의 2월 9일 방송분 촬영이 있었다. 고향을 소재로 한 ‘고향에 가자’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8일. 전국 각지를 돌며 명물과 사람들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사투리 등 지역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고향이라는 말만 떠올려도 편안해지고 아늑해지는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해 방송 두번째(전남 영광, 충북 제천)만에 호평을 받고있는 프로그램이다.
촬영 중간 중간에 사인공세를 받는 등 유명세를 치르는 개그 우먼 김미화는 “자 웃어봐요!” “남자가 그렇게 떨면 어떻게 해!” 등 다양한 농담으로 난생 처음 TV에 출연하는 순풍부락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원숙하게 녹화를 주도한다.
“대사를 하거나, 애드 립(즉흥 대사)을 할 때 일반프로그램 보다 많은 신경을 써요. 잘못된 농담 한마디에 방송경험이 없는 시골 사람들이 상처를 받으니까요.” 김미화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익산에서 알아주는 기인과 명인, 명물들이 총출동했다.
주인의 말에 따라 행동을하는 개 ‘새도’, 지난해 전국여자팔씨름대회에서 우승한 66세의 조옥선씨, 원석만 봐도 어느 나라의 어떤 보석인지를 아는 보석의 달인 이종열씨, 익산의 명가수로 통하는 김유미씨 등이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자랑했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기에 예상 못한 일도 벌어졌다. .
“소시적에 제기차기를 7,000번이나 했다”며 출연을 고집하는 이석은(88)할아버지는 제작진의 굴복(?)으로 대본에도 없던 출연기회를 잡아 주위 사람들을 웃겼으며, 작가와 연출자를 촬영장소로 데려다 준 택시 기사 한태중씨는 즉석에서 캐스팅 되는 행운을 안았다.
고향의 풋풋한 인심을 물씬 풍기는 ‘고향에 가자’는 이처럼 지방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시청자에게 신선한 감동을 준다.
정순영 책임연출자는“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시청자들이 지방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TV의 힘은 지방에서도 느껴진다. 처음 출연인데도 NG 몇 번 내지 않고 녹화를 마친다.
촬영장에 몰려든 여중생 10여명은 한결같이 장래의 꿈이 “연예인”이라고 말한다. 15시간 동안의 강행군으로 진행한 ‘고향에 가자’는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한 오후9시쯤 끝이 났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