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제주도에 갔다가 갈치국을 먹었다.갈치란 생선은 성질이 급해서 잡으면 곧바로 죽기 때문에 갈치가 많이 나는 제주도는 갈치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그 좋다는 갈치국을 반도 못 먹고 수저를 놓아야 했다.
풋고추를 넣어 시원하게 끓인다는 것이 너무 매워서 기침이 나올 정도였다. 일행이 "아까운 갈치를 왜 안 먹느냐"고 하도 성화를 해서 "좀 덜 맵게 해주시지요"라고 주인에게 타박을 했더니 주인은 "다들 시원하게 끓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더 드시라"고만 했다.
21일자 '한국에 살면서' 칼럼에서 일본인 도도로키 히로시씨는 "외국인이라면 매운 음식을 못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면서 매콤한 한식을 적극적으로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외국 어디를 다녀봐도 우리나라 음식만큼 다양하고 맛있는 것이 드물다.
또한 요즘 외국인들은 전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생활이 되어있어서 입맛도 그만큼 국제적이 되어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매운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인이면 매운 음식을 다 잘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요즘 어린 세대들의 부드러운 식습관은 말할 것도 없고 실은 어른 가운데서도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식당에 가면 음식의 매운 맛에 대해서는 전혀 등급이 없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면 기호에 따라 '웰던' '미디움' '래어'를 고를 수가 있는데 우리 음식을 먹으면서는 '아주 맵게' '맵게 ' '매콤하게' 정도를 고를 수가 없다.
굳이 주문을 하면 들어주긴 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이 묻지도 않고 음식을 들이댄다.
매운 맛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요즘 음식을 자꾸 달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역시 단 맛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고역이다.
음식을 짜게 먹지 않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 그런데도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우리 식당을 찾아주었으면 우리 식당의 음식 맛에 동의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처음 들른 식당의 음식 맛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을 때 서로 표준을 정해줄 수는있지 않을까.
한국일보의 한 독자는 지난해 11월 글을 보내 "외국인이 김치를 사려고 어느 정도 매운가를 묻는데수퍼에서는 전혀 대답을 못하더라"고 안타까워하면서 김치의 매운 정도를 포장에 표기해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매운 음식 등급제를 만드는데 가장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음식점 주인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이다. '손님은 주는대로 먹는다'가 아니라 '식당은 손님이 원하는대로 해준다'는 정신을 갖고 음식을 만들기 전에 고객의 의사를 물어보는 단계를 필수적으로 갖추도록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매운 맛의 등급이 표준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정부 산하 연구원이 나서서 할 일이다.
그리고 이에 맞춰 김치나 라면 등 포장식품으로 팔리는 것은 물론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표현에 따라 어느 정도 범위의 매운 맛인지 서로 약속이 되어야 한다.
과일이 잘 익었나를 보기 위해 당도를 검색하는 기계는 있으나 매운 맛을 점검하는 기계는 아직 보지 못했다.
세계는 지금 표준을 누가 잡느냐로 경쟁을 하고 있다. 표준은 첨단산업 제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식품에도 있다. '헝그리정신'을 '김치힘'이나 '고추장맛'으로 표현해온 우리가 이 매운 맛에서는 세계 표준을 잡는 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화숙 여론독자부장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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