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대출을 일으켜 주식, 부동산 등 대출 금리 보다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부문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이른바 ‘차입 투자’가 확산되고 있다.저금리 기조의 장기화와 각 은행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계대출 확대 영업이 낳은 새로운 유행이다.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30일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30~40대 직장인들의 호응이 커지고 있다”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주식이나 경매 등에 활용될 재테크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전년(28조9,000억원)보다 67%나 급증한 48조2,000억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3분기 현재가계 소비지출 증가율은 전분기(8.1%) 보다 오히려 둔화한 7.4%에 머물렀다”며 “이는 늘어난 가계대출이 소비 보다는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로 쏠렸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국내 은행 정기예금과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각각 5.79%,8.22%. 반면 전국 총주택을 기준으로한 주택매매가격 등락으로 따진 부동산 투자 수익률은 평균 9.9%, 종합주가지수 상승폭으로 따진 주식투자수익률은 평균 37.5%였다.
아직 우리 사회가 은행 대출을 ‘빚’으로치부하고 대출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이지만, 대출을 투자자금 조달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적극적 재테크를 벌인 ‘과감한’ 사람들에게는 만만찮은 투자수익이 가능했을 상황이다.
‘차입 투자’의 유형도 다양화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는 차입 후 단순 주식투자가 직장인 ‘차입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요즘에는 대출 자금을 단기 예금 상품에 비축한 뒤 시장 상황에 따라주식, 경매, 부동산 매매 등에 걸쳐 유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입 투자’를 위한 대표적인은행 상품은 최근 각 은행별로 치열한 대출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택 담보 대출.
각 은행들은 아파트 중도금대출, 전세자금대출,주택구입자금 대출 등 다양한 종류의 주택 담보 대출을 출시하고 있지만 재투자 용도로는 자기 소유 아파트 등을 담보로 대출 한도 내 일부를 투자자금으로 조달하는 경우가 가장 보편적이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주식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대출은 담보 부동산 가액의 20~30% 선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여유자금과 담보 대출을 합쳐 부동산 투자 등을 노릴 경우에는 대출 액수가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주택 경매가 일반화하면서 경매투자자만을 대상으로한 특화 상품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락잔금대출’과 한미은행의 ‘아파트 경락자금대출’ 등은 소유권 이전 등기와 관계없이 경락 허가 결정일부터 대출 신청이 가능, 투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낙찰 대금의 80% 내외가 대출되기 때문에 경매 투자자는 물건 낙찰가의 20% 정도면 투자가 가능하게 됐다.
‘차입 투자’의 유행이 개인파산 급증기와 맞물리고 있는 정황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은 박재환(朴在煥) 금융시장국장은 “올해 자산가격, 금리, 주가등은 경제 외적 변수에 의해 급변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큰 상황”이라며 “적극적인 투자 태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겠지만 ‘차입 투자’는 특성상 실패하면 곧바로 개인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적당한 수준에서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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